단추

옷깃이 뻣뻣했다.

양복은 석 달 전 아들 장례식 때 입은 것이었다. 세탁소에 맡겼다가 찾아온 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는데, 옷걸이에서 내릴 때 비닐이 찢어지는 소리가 너무 컸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완도에서 네 시간 반. 아내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침에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그에게 아내가 말했다. 다녀와. 그게 전부였다.

대한상공회의소 로비에 들어서자 붉은 카네이션 냄새가 났다. 수백 송이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전날 꽃시장에서 왔을 것이다. 꽃잎이 아직 차가웠다.

안내를 받아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인사를 건넸다.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소방관 아버지인지, 경찰관 어머니인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여기 앉은 이유는 하나였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축사가 이어졌다. 단어들이 귀를 스쳤다. 숭고한 희생. 국가가 기억하겠습니다. 그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봤다. 손톱이 짧았다. 어제 깎았다. 아들도 손톱을 짧게 깎는 사람이었다. 장갑 안에서 걸리면 안 되니까, 라고 한 적이 있다.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순서가 됐다. 누군가 그의 앞에 섰다. 허리를 숙여 그의 가슴에 꽃을 꽂았다. 핀이 옷감을 뚫고 들어가는 작은 저항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뭐가 고마운 건지.

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5월이었다. 바람이 불었고 가슴의 카네이션이 살짝 흔들렸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잠금화면에 아들 사진이 있었다. 소방학교 입교식 날, 정복을 입고 어색하게 웃는 얼굴.

사진 속 아들의 왼쪽 가슴에도 꽃이 있었다. 그때는 그가 달아준 것이었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조금 더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서 손이 뭔가를 만졌다. 동그란 단추. 소방복에서 잘라온 것이었다. 장례 후 아들의 짐을 정리하다가, 가위로 하나만 잘랐다. 아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단추는 매끈했다. 손가락으로 돌리면 아주 작게 소리가 났다. 주머니 천에 부딪히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들은 못 돌아오지만, 단추는 손 안에 있었다.


비슷한 이야기: → 벽시계 · 다섯 걸음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李대통령 부부, 순직 공무원 부모 위로하다 함께 눈물 — 아시아투데이, 2026년 5월 8일

한 줄 요약: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화재 순직 소방관의 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작가의 말

기사에서 멈춘 장면은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손이 아니라, 카네이션을 받는 가슴이었습니다. 아들의 입교식에 꽃을 달아준 아버지가 아들 없는 어버이날에 꽃을 받는다는 것. 그 대칭이 너무 무거워서 소설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