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간 날

순임은 열 시에 일어났다. 누운 채로.

아니. 눈은 다섯 시에 떴다. 늘 그렇듯.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라 알람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았다.

어젯밤 면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밭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 폭염중대경보. 절대.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젊었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중대경보. 경보야 뭐 여름마다 나왔지만 — 중대는 처음이었다.

여섯 시에 닭이 울었다. 순임은 천장을 봤다.

일곱 시에 선풍기를 켰다. 이미 더웠다. 아홉 시에 텔레비전을 켰다. 경산 39.9도. 하양읍. 화면 속 도로가 아지랑이에 녹아 있었다. 아나운서가 사상 첫이라는 말을 두 번 했다.

그리고 열 시. 순임은 부엌 바닥에 앉았다. 차가운 장판 위에.

현관 옆 못에 모자가 걸려 있었다. 챙 넓은 밀짚모자. 안쪽 이마 닿는 곳에 선이 하나 있다. 갈색. 삼십 년 치 땀이 마르고 마르고 마른 것. 빨아도 빠지지 않아서 — 어느 해부턴가 빨지 않았다.

문제는 토마토였다. 세 개. 어제 저녁에 봤다. 빨갛게 다 익은 것. 오늘 안 따면 물러진다. 내일이면 벌레가 먹는다.

순임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줄기를 꺾는 동작. 엄지와 검지로 비트는 습관.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한 모금. 이가 시렸다.

라디오에서 장관이 말했다. 논밭으로 절대 나가지 마십시오.

절대. 오십오 년을 나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나갔다. 남편 제삿날에도 새벽에 물을 주고 왔다. 쉰 날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 앉아 있으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도 위험하다고.

오후에 예방요원이 온다고 했다. 냉각조끼를 가져다준다고. 작년엔 안 왔다.

순임은 창문 쪽을 봤다. 밭은 보이지 않았다. 담장과 감나무 한 그루가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알았다. 토마토 세 개가 물러지고 있다는 것을.

선풍기가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순임의 목덜미를 지나갔다. 밭에서 돌아올 때 느끼던 바람과는 달랐다. 땀이 없으니 시원하지도 않았다.

열한 시. 순임은 모자에 손을 뻗었다. 갈색 선을 손끝으로 만졌다. 쓰지 않았다.

내일은 35도라고 했다. 아직 위험하다고.

토마토는 기다려주지 않는데.

비슷한 이야기: → 다섯 시 사십 분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첫 ‘폭염중대경보’ 농촌 덮쳤다…경산·포항 농작업 중단 당부 — 이투데이, 2026년 7월 12일

한 줄 요약: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가 경산·포항에 발령되어, 고령 농업인들에게 즉시 농작업을 중단하라는 당부가 내려졌다.


작가의 말

39.9도라는 숫자보다, “절대 나가지 마십시오”라는 문장이 걸렸습니다. 그 말이 보호인 사람이 있고, 그 말이 빼앗김인 사람이 있습니다. 오십오 년을 매일 밭에 나간 사람에게 오늘 하루를 쉬라는 것 — 그게 안전인 줄 알면서도, 잘 익은 토마토 세 개가 물러지는 것을 아는 사람의 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