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봄

민들레는 매년 4월이 오면 차 트렁크에 국화 한 다발을 실었다.

순천에서 진도까지 두 시간. 그 길을 열두 번째 달렸다. 처음 달릴 때 뒷좌석에는 여섯 살 딸과 두 살 아들이 있었다. 딸은 창밖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해 팽목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울음소리가 바닷바람에 섞여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딸의 손을 잡고 방파제 끝까지 걸었다. 딸이 물었다. 왜 다들 울어? 대답하지 못했다. 딸의 키는 민들레의 허리쯤이었다.

다음 해에도 갔다. 그다음 해에도.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커갔다. 아들이 글을 읽게 되던 해, 방명록 앞에서 멈춰 섰다.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었다. 잊. 지. 않. 겠. 습. 니. 다.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딸은 열네 살이 되던 해부터 차 안에서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진도로 가는 길에서만.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민들레도 묻지 않았다.

올해, 딸이 열여덟이 되었다.

팽목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었을 때 딸이 말했다. 엄마, 나 혼자 먼저 가봐도 돼? 민들레는 국화 다발을 안은 채 딸을 보았다. 딸의 키가 자신보다 반 뼘쯤 컸다. 교복 대신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살았다면 올해 서른이 됐을 아이들과 같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괜찮아, 라고 민들레는 말했다.

딸이 방파제 쪽으로 걸어갔다. 노란 리본들이 철조망에서 펄럭였다. 빛이 바랜 것과 새로 묶인 것이 나란히 흔들리고 있었다.

민들레는 대시보드를 열었다. 사진 한 장. 열두 해 전, 이 주차장에서 찍은 것이다. 여섯 살 딸이 방파제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왜 웃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국화를 들고 딸이 간 방향으로 걸었다. 방파제 끝에서 딸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바다를 보고 있었다. 가르쳐준 적 없는 자세였다.

옆에 섰다. 국화 냄새가 소금기 섞인 바람에 번졌다. 어딘가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열두 번째 봄이었다. 아이가 자라서 제 발로 이 항구에 서 있었다. 슬픔은 줄지 않았는데, 무언가 하나가 바뀌어 있었다. 뭔지는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딸의 어깨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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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벌써 12년…살아가는 나날이 죄송할 뿐” — 이투데이, 2026년 4월 16일

한 줄 요약: 세월호 12주기, 두 아이를 데리고 매년 팽목항을 찾는 한 어머니의 12년.


작가의 말

기사 한 줄에 김민들레(43)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12년 전 여섯 살이던 딸이 열여덟이 되었다는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방파제 끝에 서는 것. 그것이 기억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