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걸음

주연은 걸음을 센다.

하나, 둘, 셋. 엄마가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데 열두 걸음. 화장실에서 현관까지 스물세 걸음.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서른한 걸음. 2년 동안 매일 셌다. 처음엔 머릿속으로, 나중엔 입술로, 마지막엔 소리 없이.

서른 살에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 사유란에 ‘가사’라고 썼다. 팀장이 “좀 더 생각해봐”라고 했다. 주연은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엄마의 허리는 25년 동안 굽었다. 주연이 다섯 살 때부터. 아빠가 “수술하면 더 나빠진다”고 했고, 엄마도 그 말을 믿었다. 한의원, 물리치료, 주사. 해마다 허리는 조금씩 더 앞으로 숙여졌다. 등산을 멈추고, 시장을 멈추고, 산책을 멈췄다. 주연이 스물여덟일 때 엄마는 혼자 5미터를 걸을 수 없었다.

간병은 냄새였다. 소독약, 병실 커튼에 밴 땀, 새벽 네 시 복도의 형광등 아래 자판기 커피. 주연은 그 냄새에 익숙해졌고, 그게 싫었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에 익숙해지는 자신이.

다섯 번째 수술이었다. 의사가 “나사를 열세 개 박겠습니다”라고 했다. 주연은 숫자에 멈췄다. 열세 개. 엄마 등뼈 안에. 수술은 두 번에 나누어 진행됐다. 첫 번째 날, 오래된 나사를 빼냈다. 두 번째 날, 새 나사를 넣었다. 주연은 대기실 의자에서 여덟 시간을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그냥 벽을 봤다.

수술 후 삼 주째 되던 날이었다. 재활실에서 엄마가 평행봉을 잡고 일어섰다. 물리치료사가 “한 걸음만요”라고 했다. 엄마가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주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엄마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세 걸음. 네 걸음. 다섯 걸음.

엄마가 웃었다. 주연은 웃지 못했다. 손이 허공에 있었다. 아무도 잡지 않는 손. 2년 동안 매일 엄마의 팔꿈치를 잡던 왼손이 할 일을 잃었다.

주연은 재활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 끝 창문 앞에 섰다. 4월이었다. 병원 뒤편 느티나무에 잎이 나 있었다. 주연은 울었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슬퍼서도 아니었다. 그냥 2년치의 무언가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저녁에 엄마가 병실에서 말했다. “주연아, 네가 없었으면 나 죽었다.” 주연은 이불을 여미며 “무슨 소리야”라고 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엄마가 눈을 감았다. 주연은 불을 끄고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내일부터 무엇을 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병실 밖에서 간호사의 슬리퍼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었다. 주연은 그 소리를 셌다. 하나, 둘, 셋. 습관은 아직 손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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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25년 넘게 지속되던 척추 고통… 5번째 수술 만에 씻은 듯 — 다음뉴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26년 4월 25일

한 줄 요약: 25년간 척추 질환으로 걷지 못하던 65세 여성이 다섯 번째 수술 끝에 다시 걸었고, 그 곁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2년간 어머니를 돌본 딸이 있었다.


작가의 말

기사에서 딸 박주연 씨는 한 줄이었습니다. “딸 박주연 씨의 도움 없이는 5미터도 걸을 수 없었다.” 그 한 줄 뒤에 있을 2년을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매일 부축하는 손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순간. 그것은 기쁨이면서 동시에 어떤 상실입니다. 쓰고 싶었던 것은 그 손이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