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홉 시 오십 분, 정숙은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평소처럼.
문이 열리기까지 이십 초. 그것도 늘 같았다. 어르신은 이미 점퍼를 입고 현관에 서 있었다. 산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운동화 끈을 매주는 일은 정숙의 몫이었다. 왼손 관절이 굳은 지 일 년째라 했다. 하지만 걷는 건 좋아했다. 남원천 강변을 따라 오 분, 돌아오는 데 칠 분. “갈 때보다 올 때가 느린 건 오르막 탓이지.” 어르신의 입버릇이었다. 오르막이라 해봐야 발등 높이만큼도 안 되는 경사였다.
그날도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정숙은 우산을 챙겼다. 어르신은 모자를 거부했다. “맞으면 되지, 뭘.” 그것도 입버릇이었다.
남원천은 평소와 달랐다. 물빛이 누렇고, 소리가 거셨다. 흙냄새가 공기 속에 짙었다. 정숙은 말했어야 했다. 돌아가시죠. 입을 열기 전에 어르신이 멈춰 섰다. 늘 서는 자리. 난간에 손을 얹고 물을 내려다보는 자리.
“물이 많네.”
발이 미끄러졌다. 정숙이 손을 뻗었다. 점퍼 소매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나일론의 매끈한 감촉만 손끝에 남았다.
열 시 일 분.
119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 두 번 끊었다. 세 번째에야 주소를 말했다. 풍기읍 성내리 남원천. 남원천. 남원천.
강변에 서서 정숙은 물을 봤다. 어르신이 늘 보던 물을. 이제 그 물이 어르신을 데리고 있었다.
이틀 뒤, 정숙은 사무실에서 돌봄 일지를 펼쳤다. 날짜, 시간, 활동 내용.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썼다.
산책(미완료).
괄호 안의 두 글자를 쓸 때 종이가 살짝 찢어졌다.
그날도 운동화 끈은 단단히 묶여 있었다.
비슷한 이야기: → 산책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북 영주서 급류 휩쓸린 70대 실종…수색에 374명 투입 — 이데일리, 2026-07-11
한 줄 요약: 생활지원사와 산책 중 급류에 휩쓸린 76세 남성을 찾기 위해 사흘째 374명이 수색하고 있다.
작가의 말
374명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걸렸다. 한 사람을 찾기 위해 374명이 움직인다. 그런데 내가 자꾸 돌아간 건 그 숫자가 아니라, 점퍼 소매를 놓친 손이었다. 매일 운동화 끈을 매주던 손이, 정작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는 것. 돌봄이라는 일의 무게가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