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업계를 관통하는 한 문장: 헤드라인 숫자는 모두 ‘사상 최대’를 가리키지만, 그 뒤에서는 다음 분기의 균열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률이 엔비디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숫자가 시장을 흥분시키는 사이, 현대차는 역대 최대 매출을 찍으면서도 이익은 20% 넘게 줄었다. 그리고 오늘(7월 24일)을 기점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임시 관세 체계가 끝나고 영구 법안 기반의 새 관세 체계가 시작됐다. 숫자는 좋아 보이는데, 구조는 흔들리고 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제조사가 칩 설계사보다 더 많이 남긴다
오는 29일 SK하이닉스가 2분기 공식 실적을 발표한다.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예상치 평균)는 매출 83조 9,000억 원, 영업이익 64조 1,600억 원이다. 영업이익률로 환산하면 76%대 — 이는 엔비디아(65~68%)와 TSMC(58.1%)를 웃도는 수치다. 반도체를 ‘설계’하거나 ‘위탁생산’하는 회사보다, 실제로 반도체 메모리 칩을 ‘만들어 파는’ 회사의 마진이 더 높아진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일이다.
이 반전의 중심에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이 있다. 일반 D램이 칩을 평면으로 배치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과 달리, HBM은 다수의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훨씬 빠르게 대량의 데이터를 전달하는 구조다. 쉽게 말하면 레고를 옆으로 잇는 게 아니라 위로 쌓는 방식으로, 공정 난이도와 원가가 범용 D램보다 훨씬 높다. AI 가속기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HBM 없이는 GPU를 만들 수 없고, 전 세계 AI 인프라 투자가 2026년에만 725억 달러(약 100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HBM을 가장 많이, 가장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SK하이닉스로 수요가 집중된 결과다. 현재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약 58%,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각각 21% 수준이다.
그러나 ‘지금 이 마진이 구조적으로 지속되는가’는 별개의 질문이다. 어제 이 지면에서 짚었듯이, SK하이닉스는 HBM 물량의 상당 부분을 LTA(Long-Term Agreement, 장기 고정가 공급계약)로 판매하고 있다. LTA는 가격이 떨어질 때 하방을 막아주지만, 현물 가격이 오를 때는 그 상승분을 온전히 챙기지 못하는 ‘천장’이기도 하다. 2분기 중 범용 D램 현물 가격은 30%, NAND는 50% 뛰었음에도 SK하이닉스의 평균 판매 단가 상승폭이 경쟁사보다 낮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영업이익 추정치를 컨센서스 대비 각각 12%, 8% 하향한 이유도 수요 둔화가 아니라 이 LTA 구조와 성과급 충당금 등 일회성 비용 반영이었다.
달의 의심: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최근 현재 메모리 가격 수준을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평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너가 자사 제품 가격을 공개적으로 “비정상”이라 언급하는 건 통상 사이클 정점 근처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동시에 HBM4 생산 속도를 범용 D램 쪽으로 일부 조절한다는 보도가 하루 10%대 주가 급락을 부른 전례가 있다는 사실은, 시장이 이미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는가”를 놓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는 신호다.
어디로 가는가: 29일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 HBM4 공급 확대 속도와 LTA 가격 재협상 여부가 확인되면 시장이 안도할 가능성을 60%로 본다. 반면 신중한 코멘트가 나오거나 삼성전자가 HBM4 세대에서 점유율을 40%대까지 좁힌다는 전망이 재부각되면, 76%라는 마진율이 ‘구조적 우위’의 증거가 아니라 ‘이미 반영된 기대치의 정점’으로 재해석될 위험이 40%다.
출처: TrendForce | 2026-07-22, 24/7 Wall St | 2026-07-21, 리드경제 | 2026-07-22
현대차: 덜 팔았는데 매출은 최고, 이익은 최저
현대차가 어제(7월 23일) 발표한 2분기 성적표는 숫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매출액 49조 2,153억 원 —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2조 8,509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8% 줄었다. 팔린 차는 99만 2,000대로 오히려 6.9% 감소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현대차는 지난해보다 차를 덜 팔았는데, 더 비싸게 팔아서 매출은 지켰지만 각종 비용이 늘어 이익은 크게 줄었다.
이익 감소 원인은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미국에 납부한 관세만 2분기에 약 9,000억 원이고, 상반기 누적으로는 약 1조 8,000억 원에 달한다.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폐지와 중국산 전기차의 공격적 가격 공세에 맞서 소비자 인센티브(할인)를 늘리는 데 약 4,000억 원이 추가됐다. 협력사 화재로 제네시스·팰리세이드 같은 고부가 차종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약 2,000억 원의 믹스 손실이 발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약 4,000억 원 부담으로 작용했다(원가절감으로 절반가량 상쇄). 이 수치들은 현대차 CFO가 컨퍼런스콜에서 직접 밝힌 내용으로, 복수 매체가 교차 확인했다.
달의 의심: 현대차 CFO는 “하반기에는 전년 대비 관세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이미 관세를 냈기 때문에 비교 기준(베이스)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어 보인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지점은 인센티브다. 중국 전기차의 가격 전쟁은 관세 기저효과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고, IRA 폐지로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진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인센티브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 이건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구조적 압박이다. 게다가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차 부분파업이 예정돼 있어 3분기는 관세와 파업이 동시에 실적에 찍히는 첫 분기가 된다.
어디로 가는가: 화재로 인한 생산 차질은 공급망 복구로 이르면 3분기 안에 정상화될 수 있고, 관세 기저효과도 연말로 갈수록 유리해진다. 이 경우 3분기가 저점이고 4분기부터 마진이 회복되는 ‘V자 반등’이 가능하다. 이 시나리오에 45%를 본다. 반면 중국산 전기차 인센티브 경쟁이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파업이 반복된다면, 5%대 후반 영업이익률이 “일시적 저점”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선”으로 굳어진다. 이 가능성을 55%로, 조금 더 높게 본다. “덜 팔고 더 비싸게”는 결국 시장점유율 손실을 가격으로 가리는 전략인데, 그 가격 프리미엄이 중국 경쟁사가 올라오면서 언제까지 유지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출처: 헤럴드경제 | 2026-07-23, 이투데이 | 2026-07-23, Korea Herald | 2026-07-23
관세 D-0: 배터리를 구한 것이 배터리를 때린다
오늘(7월 24일)은 미국 무역 정책의 전환점이다. 2025년 연방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린 상호관세를 메우기 위해 임시로 적용하던 10% 글로벌 일률 관세가 오늘 자로 만료되고, Section 301(통상법 301조)에 근거한 새 관세 체계가 발효됐다. 301조는 두 가지 트랙으로 나뉜다. 강제노동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되는 국가 제품에 대한 강제노동 트랙(12.5%)과, 과잉생산을 통한 불공정 경쟁에 대응하는 과잉생산 트랙(세율 미확정)이다. 한국은 강제노동 미채택국으로 분류되어 12.5%가 적용될 예정이나, 이 세율이 지난해 한미 양국이 합의한 15% 상한(한국이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가로 받아낸 관세 상한선) 안에 흡수되는 형태여서 추가 부담은 제한적이다.
문제는 업종에 따라 온도차가 크다는 것이다. 반도체와 자동차·철강은 이번 301조의 직접 대상이 아니다. 반도체는 별도의 법 조항(Section 232, 국가안보 명목 관세)으로 이미 관리되고 있어 이번 301조가 추가로 적용되지 않고, 자동차와 철강도 이미 별도 품목 관세가 붙어 있어 중복 적용에서 제외됐다. 반면 배터리, 전기장비, 일반기계, 산업장비, 디스플레이, 화학 소재 등은 이번 301조의 직접 타깃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K-배터리 3사가 셀 소재로 쓰는 양극재와 음극재의 중국 의존도가 각각 90%를 넘는 상황에서, 이 소재들에 추가 관세가 붙으면 생산 원가가 구조적으로 올라간다.
달의 의심: “배터리 관세”를 둘러싼 서사가 6개월 만에 뒤집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이 중국 배터리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덕에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린다는 것이 시장의 주류 서사였다. 중국산 배터리가 미국에 들어오기 어려워진 만큼 한국산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번 301조는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에서 수입해 쓰는 소재에도 타격을 준다. 관세가 배터리를 구해주는 방패였다가, 이제 그 방패가 배터리를 때리는 무기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과잉생산 트랙의 세율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확정이라는 사실 자체가 불확실성이며, 여러 관세 트랙이 동시에 쌓이면 15% 상한을 초과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오독 위험이 있다. “반도체는 관세 무풍지대”라는 해석은 정확하지 않다. 오늘 발효된 301조에서 반도체가 빠진 건 맞지만, 반도체를 직접 겨냥한 Section 232 국가안보 관세 트랙은 별개로 진행 중이다. 이 트랙의 3단계 마감 시한은 7월 1일이었는데, 이후 3개월 넘게 공개 발표가 전무한 채 침묵하고 있다. “해결됐다”가 아니라 “방치 중”에 가깝다.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에 HBM 패키징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트랙을 의식한 행보로 읽혀야 한다.
어디로 가는가: 15% 상한이 지켜져 과잉생산 트랙이 지연되거나 낮은 세율로 확정된다면 배터리 업종의 충격은 “비용 증가”에 그치고 투자 철회까지는 가지 않는다. 이 시나리오에 55%를 본다. 반면 과잉생산 트랙이 강제노동 트랙 위에 추가로 쌓이고 배터리 소재 예외 요청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이미 IRA 폐지와 전기차 수요 둔화로 눌려있는 K-배터리 업종에 원가 압박이 한 겹 더 얹히는 구도가 된다. 이 가능성을 45%로 본다. “관세가 배터리를 구했다”는 6개월 전 서사는, 오늘 이후 적어도 재검토 시작선에 올라야 한다.
출처: 파이낸셜뉴스 | 2026-07-21, 머니투데이 | 2026-07-20, 아시아경제 |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