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 이기고 나서

당구실은 오후 두 시가 제일 붐볐다. 에어컨 바람이 세게 도는 구석 자리를 장호는 좋아했다.

큐대 소리, 공 부딪히는 소리. 늘 같은 소리였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깠다. 박하 향이 훅 끼쳤다. 옆자리 박씨에게도 하나 내밀었다.

“이따 이기고 나서 먹지.”

박씨는 웃으며 사탕을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큐대를 겨눴다.

그대로 휘청였다. 소리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장호는 무릎을 꿇었다. 손바닥을 겹쳐 가슴 위에 얹었다.

하나, 둘, 셋. 세는데 다른 숫자가 겹쳐 들렸다. 지난 4월, 이름도 몰랐던 아흔 살 회원 앞에서 세던 숫자였다. 그때도 이 자리였다.

서른, 마흔. 손에서 아직 박하 냄새가 났다. 박씨의 눈꺼풀이 떨렸다. 구급대가 도착했다.

병원으로 실려 가는 걸 보고 돌아서는데, 셔츠 주머니가 만져졌다. 사탕은 그대로였다.

이겨야 먹을 수 있는 사탕이었다.

표창패를 받던 날, 사람들은 그를 생명의 은인이라 불렀다. 장호는 손사래를 쳤다. 정작 마음에 걸린 건 다른 거였다. 갈비뼈가 몇 대 부러졌을지 모른다는 것. 다음에 당구 치자고 하면 박씨가 웃을지, 손사래를 칠지 모른다는 것.

퇴원하던 날, 사탕 한 봉지를 들고 병실에 갔다.

박씨가 물었다.

“이제 나랑 당구 안 치려나.”

장호는 사탕 하나를 까서 내밀었다.

“이따 이기고 나서 먹어.”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상의 배움이 만든 기적”…심폐소생술로 두 생명 살린 70대 포항 시민 — 국민일보, 2026.07.28

한 줄 요약: 포항 평생학습원 어르신관 회원 김병천씨가 지난 4월과 이달 21일, 두 차례에 걸쳐 쓰러진 동료 회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생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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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두 번째로 무릎을 꿇는 순간을 상상했다. 4월엔 이름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7월엔 매일 당구를 함께 치던 사람 앞에서. 뉴스는 그를 “생명의 은인”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가 정작 걱정했을 사소한 것들이 궁금했다 — 부러졌을지 모를 갈비뼈, 그리고 다시 함께 칠 수 있을 다음 게임. 이겨야 먹을 수 있었던 사탕 한 알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