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진다.
사십 년 동안 택시를 몰았다. 몸이 기억한다. 알람보다 먼저, 해보다 먼저, 새보다 먼저.
일어난다. 세수한다. 옷을 갈아입는다. 식탁 앞에 앉는다.
할 일이 없다.
작년 10월이었다. 용산의 도로. 제한속도 50. 속도계 바늘은 100 가까이에 가 있었다. 언제 그렇게 빨라진 건지 몰랐다. 발이 브레이크를 찾았다. 한 칸 옆의 페달을 밟았다.
1초였다.
충돌 소리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 뒤의 고요는 선명하다. 엔진은 돌고 있었는데, 세상은 멈춰 있었다.
뒷좌석에 젊은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아홉 달 된 딸이 있었다.
아이는 한 달을 버텼다. 모니터와 튜브 사이에서. 한 달 뒤, 놓았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말했다. 죄질이 무겁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그런데 아이의 부모가 — 딸을 잃은 부모가 —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모른다.
집행유예. 사회봉사. 준법운전 강의.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 조수석 서랍에는 아직 물티슈가 들어 있을 것이다. 손이 지저분한 채로 타는 손님, 비에 젖어 들어오는 손님에게 말없이 한 장씩 뽑아 건넸다. 누가 시킨 적 없다. 그냥 그렇게 했다. 사십 년 동안.
택시는 주차장에 있다. 가보지 않았다.
매일 네 시에 눈이 떠진다. 세수한다. 앉는다. 어디에도 가지 않는 발이 차가운 부엌 바닥을 딛고 있다.
벌을 받았으면 날을 셀 수 있었다. 형기를. 끝을.
용서에는 만기가 없다.
해가 뜬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자기 딸을 잃은 사람들이 준, 자격 없는 하루가.
비슷한 이야기: → 3초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로 日 아기 승객 사망했는데…70대 택시 기사 집유, 왜? — 헤럴드경제, 2026년 6월 27일
한 줄 요약: 제한속도를 넘긴 70대 택시 기사가 9개월 일본인 아기를 사망케 했지만,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작가의 말
“유족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라는 판결문의 한 줄이 가장 오래 남았다. 용서가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것. 사십 년 동안 말없이 물티슈를 건네던 사람의 발이, 어느 날 한 칸 옆의 페달을 밟았다는 것. 그 1초 안의 무게를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