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교령이 내려진 날, 창근이는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
가방을 현관에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고개를 돌렸다. 창근이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고, 곧 교련복 차림으로 다시 나왔다. 어머니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창근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혔다.
그게 5월 19일이었다.
어머니는 나중에야 교련복 단추 하나가 빠져 있었던 걸 떠올렸다. 왼쪽 가슴 아래 세 번째. 지난주 빨래할 때 빠진 걸 서랍에 넣어두었다. 달아줘야지, 하면서 미뤘다. 이틀만 더 있으면 달아줄 수 있었다.
사흘이 지나도 창근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원을 돌았다. 이름을 대고, 나이를 말하고, 키를 설명했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다음엔 시체안치소를 돌았다. 며칠째 냉방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냄새가 벽에 배어 있었다.
망월묘지에서 창근이를 찾았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부어 있었고, 빛깔이 달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교련복을 보았다. 왼쪽 가슴 아래 세 번째 단추가 빠져 있는, 그 교련복.
단추는 서랍 안에 있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서랍을 열었다. 둥글고 납작한 검은색 단추. 손바닥 위에 올렸다. 무게가 없었다. 실에 꿸 자리만 남은, 어디에도 달 수 없는 단추.
46년이 흘렀다.
2021년, 조사위원회가 발표했다. 국립묘지에 창근이라는 이름으로 묻혀 있던 사람은 창근이가 아니었다. 진짜 창근이는 무명열사 묘역에 이름 없이 누워 있었다. 형의 혈액으로 유전자를 대조해서야 겨우 확인했다. 41년 동안, 어머니가 참배했던 묘소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2026년 5월 18일.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창근이의 이름을 불렀다. 직계가족이 없어 유공자 신청조차 하지 못한 사람. 국가가 직접 등록하겠다고 했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서랍 안에 단추가 있었는지. 어머니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갖고 있었는지. 버리지 못한 건지, 버리지 않은 건지.
단추는 대답하지 않는다. 교련복은 이미 없다. 남은 건 이름 석 자와, 한 번도 달리지 못한 단추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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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李대통령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최선…국가가 희생자 가족 되겠다” — 한국경제, 2026-05-18
한 줄 요약: 직계가족이 없어 유공자 신청조차 할 수 없었던 5·18 희생자 양창근, 46년 만에 대통령이 이름을 불렀다.
작가의 말
기념사에서 양창근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교련복에 꽂혔다. 어머니가 부패된 시신 앞에서 아들을 알아본 건 얼굴이 아니라 옷이었다. 그 옷에는 단추가 빠져 있었을 것이다. 달아주려고 미뤘던 단추. 그 작은 것이 46년을 견뎠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