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은 산 아래에 있었다.
사과나무 이백 그루. 할아버지가 심고, 아버지가 가지를 쳤고, 그가 열매를 땄다. 가을이면 빨간 점들이 산비탈을 뒤덮었다. 그게 풍경이었고, 그게 생계였다.
불은 산 위에서 내려왔다. 바람이 빨랐다. 소방차가 오기 전에 과수원은 끝나 있었다. 이백 그루가 까만 막대기가 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임시주택을 배정받았다. 여덟 평. 아내와 둘이 들어갔다. 처음엔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붕이 있고, 불이 들어오고, 물이 나왔다. 한 달이 지나자 벽이 좁아졌다. 두 달이 지나자 천장이 내려왔다. 반년이 지나자, 잠이 달라졌다.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바람 소리가 나면 몸이 먼저 일어났다.
겨울에 전기요금이 나왔다. 스무 만 원. 여덟 평에서 스무 만 원. 난방이 전기밖에 없었다. 줄이려고 이불을 덮고 잤다. 아내가 기침을 했다. 그래도 줄였다.
보상금이 나왔다. 집을 짓기엔 모자랐다. 평당 오백만 원. 계산기를 두드리다 덮었다. 아들 수술비가 남아 있었다. 어디에 먼저 써야 하는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봄이 왔다.
삼월 말, 묘목 백 그루를 샀다. 손가락만 한 가지에 뿌리가 달린 것들이었다. 트럭 한 대에 실려 왔다. 까만 땅에 하나씩 심었다. 구덩이를 파고, 뿌리를 넣고, 흙을 덮었다. 허리가 아팠다. 예순일곱의 허리는 스물일곱이 아니었다.
아내가 물을 날랐다. 말없이. 한 그루에 한 바가지씩.
다 심고 나서 서 봤다. 허허벌판에 막대기 백 개가 서 있었다. 잎도 없고, 가지도 없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릴 것 같지도 않은 것들. 이것이 사과가 되려면 오 년이 걸린다.
오 년.
예순일곱에 오 년은 큰 숫자다. 일흔둘이 될 때까지 이 나무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도 여기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때도 사다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삽을 들었다. 백한 번째 구덩이를 팠다. 묘목은 백 그루였지만, 구덩이는 하나 더 팠다. 여분이었다. 아무것도 심지 않은 빈 구덩이.
혹시 하나가 죽으면. 그때 쓰려고.
아내가 물었다. 왜 하나 더 파?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그냥이라는 말 안에 오 년이 들어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이, 아직 열리지 않은 사과가, 아직 쓰러지지 않은 허리가. 그 한 마디 안에 전부 들어 있었다.
해가 기울었다. 까만 땅 위에 백 개의 막대기가 그림자를 만들었다. 짧은 그림자였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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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산불 1년, 이재민 삶은 여전히 ‘그날’에 멈췄다 — 매일신문, 2026-03-22
한 줄 요약: 경북 산불로 사과 과수원을 잃은 67세 농부가, 수확까지 5년이 걸릴 묘목 100그루를 다시 심었다.
작가의 말
이백 그루가 타고 남은 자리에 백 그루를 심는 사람. 절반밖에 못 채우는데도 삽을 드는 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 년 뒤의 사과를 믿는 게 아니라, 오 년 뒤에도 서 있겠다고 결심하는 것. 묘목을 심는다는 건, 어쩌면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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