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합의선이 살아있다 — 관세 상한도, 이란 협상 채널도, 한국의 안보-경제 투트랙도 모두 ‘유지 중’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지만, 그 아래에서는 구글 벌금이 새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기고, 드론이 미군 기지를 타격하고, 한국 외교장관이 중국을 겨냥한 성명에 서명하는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1. 대법원이 막아도 관세는 돌아온다 — 트럼프의 법적 우회와 EU-미국 균열
왜 지금인가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트럼프의 초법적 관세 권한에 제동을 걸었다. ‘국가비상경제권한법(IEEPA)’이라는 법을 근거로 부과했던 10~50%짜리 상호관세가 위헌이라는 판결이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난 7월 24일, 한국을 포함한 60개국 수출품에 다시 새 관세가 붙었다. 세율은 이전과 비슷한 10~12.5%, 이유는 ‘강제노동 단속 미흡’이다.
같은 날 유럽연합(EU)이 구글에 약 10억 달러 벌금을 부과했고, 트럼프는 하루도 안 돼 “EU가 매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무역법 301조 조사를 지시했다. 7월 1일 겨우 봉합한 EU-미국 무역 프레임워크가 불과 3주 만에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대법원이 막은 건 IEEPA라는 하나의 법적 통로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판결 직후,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최장 150일간 부과할 수 있는 ‘임시 관세'(무역법 122조)로 즉각 대체했다. 그리고 그 150일이 정확히 7월 24일에 만료되는 시각, 이번엔 ‘불공정 무역관행 조사'(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 강제노동 관세가 발효됐다. 관세 공백은 단 하루도 없었다. 통상 전문 로펌들은 이를 “법적 방어력은 높이되 효과는 유지한 구조적 우회”라고 평가한다. 다만 그 해석이 이런 법률 자문을 파는 업계의 이해관계와 섞인 사후 합리화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한국의 경우 관세율은 12.5%로 책정됐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번 강제노동 관세는 자동차·철강과 함께 반도체 등 이미 별도의 품목별 관세가 붙어있는 물건들을 제외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는 이번 조치의 직접 타격권 밖이다. ‘12.5% 관세 확정’이라는 헤드라인이 주는 인상보다 실질 충격이 제한적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미 합의로 확보한 15% 상한이 이번에도 적용되도록 협의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미 무역대표부(USTR)의 공식 확인은 아직 없다.
EU 문제는 구조가 다르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은 빅테크 기업들의 자사 서비스 우대를 규제하는 법이다. 이번 구글 벌금은 그 집행의 일환이었다. 문제는 이 집행이 구글 한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메타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미국이 “EU가 우리 기업을 규제할 때마다 관세로 되받겠다”는 패턴을 굳히면, 7월 1일 봉합한 EU-미국 무역협정은 발효 초부터 반복적인 마찰에 노출된다.
달의 의심
지금 서사가 너무 매끄럽다. 대법원을 우회해 관세를 유지했다는 흐름이 ‘치밀한 마스터플랜’처럼 읽히지만, 패배에 대한 연속적 임기응변이었을 가능성도 동등하게 열려있다. 내가 틀린다면: 과잉생산능력을 이유로 진행 중인 또 다른 301조 조사(한국 포함 16개국 대상)가 온건하게 마무리되거나, EU가 구글 벌금 이후 협상으로 속도를 조절해 무역 전쟁이 확산되지 않는 경우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프레임워크 유지, 45%): EU는 연말 관세특혜 정지 조항을 실제로 발동하지 않는다. 구글 벌금발 301조 위협도 다른 많은 301조 조사들처럼 수사적 압박 단계에서 희석된다. 한국 15% 상한은 유지되고, 반도체 제외 덕분에 실질 피해는 제한적이다.
시나리오 B(프레임워크 균열, 55%): EU의 DMA 집행이 애플·메타로 이어지면서 “규제할 때마다 미국이 관세로 되받는” 패턴이 고착된다. 7개월도 못 버티고 EU-미국 무역협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B에 55% 무게. 대응 속도(벌금 하루 만에 301조 지시)와 DMA 집행의 반복 구조가 근거다. 단 실제 관세 부과까지는 절차적 시간이 걸리므로, 근시일 내 파열보다는 ‘위협 고착’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어제 뉴스레터(2026년 7월 25일 정치·지정학)에서 다룬 15% 상한 협상이 이 구도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
2. 대화는 계속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 이란-호르무즈 교착의 실체
왜 지금인가
2026년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작전명 ‘에픽 퓨리’)은 5개월째 접어들었다. 6월 17일 양측은 60일 안에 핵·미사일·제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지만, 7월 7일 이란이 사전 승인 항로를 우회한 상선 3척을 타격하면서 사실상 붕괴됐다. 미국은 약 90개 표적에 재보복 공습을 단행했고, 트럼프는 휴전을 “끝났다(OVER)”고 공개 선언했다.
7월 23일 브렌트유(국제 원유 기준 가격)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예멘의 이란 지원 세력 후티는 같은 날 홍해에서 사우디 유조선 2척을 공격하며 전선을 또 한 겹 넓혔다. 7월 25일 기준 오만·카타르 등 중재국들이 10일 휴전안을 제시했고,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 협상 채널이 살아있다고 확인했다. 교착 속 대화가 동시에 진행 중인 상태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이 갈등의 핵심은 “휴전이냐 전쟁이냐”라는 표면적 질문보다 훨씬 깊은 데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어느 나라도 통제권을 주장할 수 없는 국제수역인가, 아니면 이란이 통행 경로와 절차를 ‘감독’할 권리가 있는 수역인가라는 법적 지위 문제다. MOU 5조에 이 부분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것이 갈등의 씨앗이었다. 이란의 감독권이 인정되면 이론적으로 통행료 부과나 특정 선박 검문이 가능해진다. 미국이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이유다.
후티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이다. 이란-미국 전쟁 이후 홍해와 아덴만에서 상선 공격을 재개했고, 트럼프는 향후 공격 시 이란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전쟁이 호르무즈를 넘어 홍해까지 번지면서, 아시아로 향하는 두 개의 주요 해상 물류로가 동시에 위협받는 형국이다.
한국의 에너지 구조가 이 전쟁에 취약한 이유는 숫자로 분명하다. 원유 수입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에너지 자원의 94%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구조에서, 이 항로의 교란이 장기화될수록 주유소 기름값과 전기·가스요금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캐나다·미국산 원유 등 대체 공급선 확보에 나섰지만 단기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것이 에너지 업계의 평가다. 한국 미국경제연구소(KEIA)는 개전 한 달 시점에 “비교전국 중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으나, 이는 한 분석기관의 추산치이며 정부 공식 수치로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달의 의심
확전 방향으로 읽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신호가 있다. 지정학 리스크에 실시간으로 베팅하는 금 가격이 트럼프의 “역대 최대 규모 공격 검토”라는 경고에도 4일 연속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7월 24일 +0.09%). 24시간 전 세계 자금이 실제로 전쟁 위험을 가격에 반영했다면 이럴 수 없다. 시장은 트럼프의 말을 협상용 수사로 읽고 있다는 뜻이다. 이란의 자국 경제 상황(제재·물가·실업)을 고려하면 전면전보다는 협상 복귀의 유인도 적지 않다. 내가 틀린다면: 10일 휴전안이 타결되고 호르무즈 항행의 자유에 대한 부분합의로 MOU가 다시 궤도에 오르는 경우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외교적 봉합, 40%): 10일 휴전안이 타결되고 호르무즈 통항에 대한 부분합의가 이뤄진다. 유가는 80~90달러대로 안정되고, 한국 에너지 공급망의 단기 충격은 제한된다. 금의 4연속 무반응이 시장의 합리적 판단을 반영한 것이었다는 결론이 된다.
시나리오 B(확전 심화, 60%): “역대 최대 공격 검토”가 수사로 끝나지 않고 실행되거나, 이란이 미군 기지 드론 공격을 이어가며 보복 사이클이 이어진다. 호르무즈와 홍해 이중 물류 차단이 수개월간 고착되어 아시아 에너지 위기가 구조화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B에 60% 무게, 단 추가 상향은 없다. 7월 25일 기준 미-이란 양측 모두 협상 채널이 살아있다고 확인했고, 새로운 확전 실행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다. 60%를 유지하되, 금 가격의 4연속 무반응이라는 반대 신호를 의미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호르무즈의 법적 지위 문제는 10일 휴전안이 타결되든 안 되든 남는 근본 문제라는 점에서, 단기 휴전이 항구적 봉합이 되기 어렵다는 판단은 유지한다.
3. 양다리 외교의 균열 — 이재명 정부, 안보에서부터 프레임이 흔들린다
왜 지금인가
7월 2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현 한국 외교부 장관,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모테기 일본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계기에 3자 회담을 가졌다. 7월 7일 나토 정상회의 계기 3자 회담에 이어 2주 만의 재회동이다. 회담 엿새 전인 7월 16일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위 인사 왕후닝이 이끄는 대표단이 조중우호조약 65주년을 계기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접견했다. 한미일 결속과 북중 밀착이 같은 주에 동시에 가시화됐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이재명 정부는 안보는 한미일 동맹, 경제와 지역 협력은 한중일 프레임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올해 1월 일본 나라, 5월 경북 안동에서 한일 정상 셔틀외교를 완성한 것도 이 전략의 일환이다. 그런데 마닐라 회담 결과를 들여다보면 균열이 보인다. 3국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함께 “남중국해에서의 현상 변경 시도 반대”와 “국제법 준수”를 명시했다.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을 직접 겨냥한 언급이다. 이재명 정부가 “한중일 협력”을 대외적으로 표방하면서도 안보 성명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문구에 서명했다는 뜻이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겠다는 전략이 안보 영역에서부터 압박받고 있다는 신호다.
한미 양자 회의에서는 쿠팡 규제 문제가 새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측은 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규제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우려를 제기했고, 한국은 이를 반박했다. 국내에서 매일 이용하는 서비스가 한미 통상 마찰의 소재가 됐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무역협정이나 관세처럼 먼 얘기가 아니다. 쿠팡 이용자에게는 향후 서비스 요금이나 정책 변화의 배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은 한미일 3자 회담이 열릴 때마다 “비핵화는 이론·실천상 최종 종결된 사안”이라는 담화를 낸다. 다만 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한미일 관련 회담마다 거의 예외 없이 반복돼온 패턴에 가깝다. 왕후닝 방북의 타이밍이 마닐라 회담과 겹친 것도, 조중우호조약 65주년이라는 별도의 캘린더 이벤트였을 가능성이 크다. 의도적 신호로 과잉 해석하기보다는 독립적 이벤트로 보는 것이 더 안전하다.
달의 의심
이재명 정부의 투트랙이 현재 유지되는 이유는 미국·일본·중국 모두 실익 때문에 한국의 애매함을 용인하고 있어서다. 일본은 대만 리스크 때문에 한국을 잡아둘 필요가 있고, 중국은 한국이 완전히 미국 편으로 기울지 않도록 이재명 정부의 관여 노선을 활용한다. 8월 1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 지도부(김민석·정청래·송영길 3파전)가 외교안보 노선에 어떤 신호를 줄지가 변수지만, 세 후보 모두 현재까지는 외교안보 차별화보다 당내 통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판단이 이른 단계다. 내가 틀린다면: 8/17 이후 새 지도부가 투트랙을 뒷받침하고, 미국도 단기적으로 이 구도를 용인하기로 결정하는 경우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투트랙 생존, 45%): 미국·일본·중국 모두 실익상 한국의 포지션을 당분간 용인한다. 쿠팡 문제는 실무 협의로 봉합되고, 남중국해 성명은 중국도 외교적으로 수용 가능한 수위로 소화된다. 8/17 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도 투트랙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정리된다.
시나리오 B(분리 붕괴 압력, 55%): 미국이 반도체·AI 공급망에서 한국에 중국과의 관계를 더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거나, 8/17 전당대회 결과가 한미일 구도에서 이탈하는 신호를 보낼 경우 분리 전략의 균열이 표면화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B에 55% 무게, 검증 시점은 8월 17일. 지금 당장 분리 전략이 무너진다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좁혀지는 중이다. 세 후보 모두 외교안보 노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어, 전당대회 결과와 그 직후 새 지도부의 첫 외교안보 발언이 이 판단의 실제 검증 시점이 될 것이다.
관세 상한도, 이란 협상 채널도, 한국의 투트랙 외교도 — 오늘의 세 장면은 모두 겉으로는 ‘선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글 벌금 하나가 새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기고, 드론 한 기가 미군 기지를 치고, 남중국해 성명 하나가 한국의 외교 프레임을 흔든다. 큰 전환은 언제나 이런 세부 사항들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것이, 오늘 세 꼭지가 동시에 전하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