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서류가 도착한 건 2월이었다.

도지사가 직접 왔다. 현관 앞에 구두를 벗고 섰다. 봉투를 건넸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받았다. 손이 떨렸다. 77년을 살면서 이 정도로 손이 떨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봉투를 열지 않았다. 무엇이 적혀 있는지 이미 알았다. 아버지의 이름. 고석보. 그리고 그 옆에 자신의 이름. 고계순. 아버지와 딸.

1948년 6월에 태어났다. 12월에 아버지가 죽었다. 제주 4·3. 여섯 달.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이름은 알았다. 어머니가 말해주었다. 네 아버지 이름은 고석보다. 그 뒤에 오는 말은 없었다. 어디서 무엇을 했고 왜 죽었는지. 어머니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호적에는 작은아버지의 딸로 올랐다. 희생자 가족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는 시대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버지 이름을 물었다. 작은아버지 이름을 댔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호적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하지만 밤에 혼자 이불을 덮으면 다른 이름이 떠올랐다. 고석보. 여섯 달만 살아 있었던 아버지.

결혼했다. 아이를 낳았다. 손자가 태어났다. 서류를 쓸 때마다 작은아버지의 이름 아래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수십 년 동안. 그때마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펜을 내려놓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아무도 모른다. 그 한 칸을 넘기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도지사가 돌아간 뒤, 그녀는 식탁에 봉투를 올려놓았다. 차를 끓였다. 마셨다. 다 마신 뒤에 봉투를 열었다. 결정서. 고계순은 희생자 고석보의 친생자임을 확인한다. 글자가 흐려졌다. 눈물 때문이 아니라 글씨가 작아서. 안경을 썼다. 다시 읽었다.

77년이 걸렸다. 국가가 종이 한 장을 건네는 데.

“한시도 아버지를 잊은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나중에 말했다. “이제야 한을 풀 수 있게 됐습니다.”

결정서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아버지의 딸 이름 옆에 있었다. 70년 만에 나란히.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작은아버지 딸’로 70여년 살아왔는데… 4·3이 갈라놓은 가족, 국가가 바로잡다 — 서울신문, 2026년 2월 13일

한 줄 요약: 제주 4·3으로 아버지를 잃은 고계순 씨(77세)가 70년간 ‘작은아버지 딸’로 살다가, 국가의 결정으로 처음으로 ‘아버지 딸’이 되었다.


작가의 말

서류에 이름을 쓸 때마다 작은아버지 이름 밑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는 것. 수십 년 동안. 그 한 칸을 넘기는 감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77년이 걸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77년을 매일 살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무게입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