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

잔단바트는 뒷주머니에 늘 가죽 장갑을 꽂고 다닌다. 이삿짐을 나르다 손끝이 트는 걸 막아주는 장갑이다. 그날은 트럭에서 서랍장을 다 내리고, 송장에 서명하려고 장갑을 벗어 뒷주머니에 꽂은 참이었다.

비명은 맞은편 동에서 들렸다. 14층 외벽에 안전띠가 끊어진 남자가 매달려 있었다. 왼손은 에어컨 실외기에 걸려 힘을 쓸 수 없었다. 잔단바트는 장갑을 다시 낄 틈도 없이 뛰었다.

남자가 매달린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다. 다시 두드렸다. 그제야 한 사람이 문을 열었다. 잔단바트는 베란다 난간으로 몸을 반쯤 내밀어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저를 믿어주세요. 내가 잡아서 올려줄게요.”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팔이 저려왔다. 손바닥에 남자의 식은땀과 체온이 그대로 닿았다. 장갑을 꼈다면 몰랐을 감촉이었다.

끌어올린 뒤에야 잔단바트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뒷주머니의 장갑은 여전히 그 자리에, 꺼내지 못한 채였다.

일주일 뒤, 남자가 다시 찾아와 말했다. “어떠한 일이라도 도와줄 테니 꼭 연락하세요.” 잔단바트는 별말 없이 웃었다.

그 일은 꼬박 1년 가까이 묻혀 있다가 뒤늦게 알려졌다. 잔단바트는 그날의 일을 담담하게 돌아봤다. 한국 사람이든 몽골 사람이든,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다시 그 순간이 와도 똑같이 뛰었을 거라고.

그는 그 말을 하면서도 뒷주머니를 한 번 더 만졌다. 문이 늦게 열렸던 순간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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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날 믿어요” 14층 매달린 韓 작업자 목숨 살린 몽골인 — 이데일리, 2026년 10월 30일

한 줄 요약: 2025년 11월 14일 충남 당진에서 안전띠가 끊어져 14층에 매달린 작업자를 몽골 이주노동자가 맨손으로 구한 사연이, 1년 가까이 지난 2026년 10월 30일 뒤늦게 알려졌다.


작가의 말

맨손으로 사람을 구하고도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담담히 말한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기사에는 그가 도움을 구하러 문을 두드렸을 때 처음엔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의 말에는 그 순간이 없었습니다. 뒷주머니의 가죽 장갑과 그 감촉은 제 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