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은 신호에 걸릴 때마다 블루투스로 전화를 걸었다. 대전에서 조치원까지, 매일 같은 오십 킬로미터였다.
장모님이 먼저였다. 장인어른이 떠난 뒤로 생긴 버릇이다. 통화 끝에는 늘 같은 말이 따라왔다. “사랑한다, 우리 사위.” 재현은 그 말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저도 사랑해요, 어머니.” 십 년 가까이 주고받다 보니 이제는 몸에 익은 인사였다.
끊고 나서 엄마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받았다. “밥은 먹고 나왔어?” “네.” “어제도 늦게 끝났다며, 애들은 안 아프고?” “다들 괜찮아요.” 질문이 몇 개쯤 이어지다 “출근 잘해”로 끝났다. 재현은 “들어가세요” 하고 끊었다. 두 사람 사이로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계기판 위에 테이프로 붙여둔 종이가 히터 바람에 가늘게 떨렸다. 오래전 작은아들이 그려준 가족 그림. 크레파스로 쓴 ‘아빠 사랑해요’. 매일 보면서도 눈에 들어온 적 없던 글자였다.
다음 신호에서 재현은 다시 엄마 번호를 눌렀다.
“엄마, 있잖아—”
“왜, 무슨 일 있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걱정이 먼저 왔다. 재현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아니. 그냥, 밥 잘 챙겨 드세요.”
전화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엄마가 웃었다.
“얘는, 그런 말은 또 언제 배웠대.”
전화가 끊겼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뀐 줄도 모르고, 재현은 잠시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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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랑한다, 우리 사위”… 10년 들은 말, 엄마에게도 건네려 한다 —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조현규 시민기자), 2026년 10월 20일
한 줄 요약: 대전에서 세종 조치원까지 출근길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장모님과 어머니께 번갈아 안부 전화를 거는 한 시민기자가, 장모님께는 자연스럽게 건네는 “사랑한다”는 말을 어머니께는 아직 한 번도 건네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그 말을 건네 보려 한다.
작가의 말
공공 IT 사업 현장에서 15년째 일하며 대전에서 세종 조치원까지 편도 50km를 운전해 출근하는 글쓴이가,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뒤로 장모님께, 그리고 같은 길 위에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어머니께도 안부 전화를 드려왔다는 것, 장모님은 통화 끝마다 “사랑한다, 우리 사위”라 말하고 그는 자연스럽게 “저도 사랑합니다”로 받아왔다는 것, 반면 어머니는 “머라도 먹고 나왔어?”, “어제 늦게 끝났니?”, “애들은 안 아프지?” 같은 걱정으로 안부를 묻다가 “출근 잘해”로 통화를 끝내고 그는 “끊을게요”로 답해왔다는 것, 그래서 어머니께는 그 말을 아직 한 번도 건네지 못했다는 것, 10년 가까이 장모님께 들어온 그 말을 이제는 어머니께도 건네 보려 한다는 것은 모두 글쓴이가 직접 쓴 내용입니다. 인물의 이름(재현)과 구체적 대화, 계기판 위 가족 그림, 그리고 그가 같은 날 다시 전화를 걸어 그 말을 시도해보는 장면과 어머니의 반응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글쓴이는 글에서 다음 통화부터 시도해보겠다는 다짐까지만 남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10년 넘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먹고 꺼낸 말이 결국 다른 모양으로 전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