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없이

마이는 저녁마다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엄마 얼굴이 뜨면 먼저 서윤을 불렀다. “서윤아, 할머니한테 인사해.” 서윤이 “할머니, 안녕” 하면 마이는 그 말을 베트남어로 옮겼다. 엄마가 길게 뭔가 물으면 짧게 줄여 서윤에게 전했다. 그 사이에 늘 마이가 있었다. 오 년 동안 그랬다.

이번엔 화면이 아니었다. 공항 근처 교육원 강당 문이 열리고, 네 나라에서 온 부모들이 한 명씩 걸어 나왔다. 마이는 줄 끝에서 엄마를 알아봤다. 끌고 온 캐리어는 모서리가 벗겨져 있었다. 둘 다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밤, 엄마는 짐 안쪽 지퍼에서 수첩을 꺼냈다. 종이 한 장에 이름이 여러 번 적혀 있었다. 서윤, 서준. 베트남식으로 한 번, 받침까지 살려 다시 한 번. 지우고 눌러쓴 자국이 겹쳐 있었다. 마이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서윤이 동생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엄마는 수첩을 펼치지 않았다. “서윤아, 서준아.” 받침까지 정확했다. 두 아이가 웃으며 달려가 품에 안겼다.

마이는 통역할 말을 고르다가, 고를 게 없다는 걸 알았다. 부엌 쪽에서 밥 짓는 냄새가 넘어왔다. 어느 나라 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는 아무 말도 옮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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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천공항공사, ‘다문화 가족 부모 초청행사’ 열어… 50명에 따뜻한 모국 상봉 선물 — 우리일보(이진희 기자), 2026-10-15

한 줄 요약: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 A씨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다문화가족 부모 초청행사로 “어머니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으셨다”며 손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

인천국제공항공사가 2026년 10월 15일 결혼이민자 가족의 고향 부모 50명을 초청해 환영행사를 열었다는 것, 베트남·키르기스탄·필리핀·캄보디아 4개국에서 왔다는 것, 올해 3회째로 5대 1의 경쟁률을 거쳐 30가정이 선발돼 항공권과 2~3주 체재비를 지원받았다는 것,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 A씨(40)가 “어머니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으셨다”, “손주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어머니께 직접 보여드릴 수 있어 가슴 벅차고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것은 모두 기사에 나온 사실입니다. A씨의 성별과 이름(마이), 어머니의 인적사항, 손주의 이름과 수(서윤·서준), 두 사람이 평소 영상통화로 대화를 이어온 지 오 년이라는 설정, 엄마와 아이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마이가 사이에서 옮겨주었다는 설정, 행사장과 집에서의 장면, 수첩에 이름을 연습한 흔적,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그 밖의 장면과 대사도 모두 제 상상입니다. 기사 속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 안에,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말을 옮기던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해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