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

순옥은 새벽 세 시면 눈이 떠졌다. 오랫동안 그 시간은 찐빵 반죽을 치대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냥 잠이 깨는 시간이었다.

방 한쪽에 친 텐트 지퍼를 올리는 소리에 도윤이 몸을 뒤척였다. 일흔 넘은 집은 벽마다 틈이 있었다. 바람은 그 틈으로 들어와 아무리 막아도 새벽이면 방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여섯 시, 도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순옥은 서랍에서 낡은 주판을 꺼냈다. 테두리가 손때로 반질거렸다. 옛날 붕어빵을 팔 때 하루 번 돈을 세던 것이었다. 동전을 세던 알을, 이제는 아이의 셈을 놓는 데 썼다.

“할머니, 나 삼백이십일 더하기 사백이야.”

도윤이 알을 밀 때마다 딸깍, 딸깍 소리가 났다. 순옥은 그 소리를 들으며 삼 남매를 키울 때는 이런 아침이 없었다는 걸 생각했다. 그때는 셈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다 자라 떠난 자식들에게 못 해준 것들이 이 아이에게로 자꾸 옮겨왔다.

도윤이 답을 맞히면 순옥은 손뼉을 쳤다. 도윤은 반장인 걸 자랑하고 싶어 입을 열었다가, 숙제가 먼저라며 다시 주판 앞으로 돌아갔다.

안방에서 시어머니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옥은 공책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였다가, 다시 넘겼다. 남편은 그 소리에도 깨지 않고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밤에 순옥은 다시 텐트를 쳤다. 지퍼를 올리기 전, 안쪽 공기부터 손으로 확인했다. 아직 덜 데워졌다.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도윤이 자라 이 방을 떠나는 날을 순옥은 가끔 그려봤다. 그날도 곁에 누가 있든, 지퍼를 올리는 손은 자신의 것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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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손주 위해 다시 시작된 인생…강진 할머니의 특별한 공부방 ('동행') — 뉴스컬처(이준섭 기자), 2026-10-24

한 줄 요약: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손주를 4년째 홀로 키우는 전남 강진의 한 할머니가 농사와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 간병을 병행하면서도 매일 아침 손주에게 주산과 수학을 가르치고, 70년 된 낡은 집의 겨울 추위는 난방텐트로 막아내고 있다.


작가의 말

할머니가 매일 아침 손주에게 주산과 수학을 가르치고, 농사와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 간병을 병행하며 낡은 집의 겨울을 난방텐트로 막아내고 있다는 것은 기사(KBS1 '동행')에 나온 사실입니다. 인물의 이름과 주판에 담긴 사연, 시어머니의 기침소리, 밤마다 텐트 속 온기를 손으로 확인하는 장면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손주를 키우는 정성이 결국 그 아이를 떠나보내는 날로도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그 어긋남을 조용히 담아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