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우는 딸에게 모닥불을 약속했다.
제헌절이었다. 십팔 년 만에 돌아온 공휴일. 금요일 하루가 붙어 사흘이었다. 재우는 오래 쉬지 못했다. 서아가 여덟 살이 되도록 같이 잔 밤이 며칠 안 됐다.
임진강 근처 야영장이었다. 텐트를 치고, 장작을 샀다. 비닐 아래 차곡차곡 쌓았다. 저녁에 불을 피우기로 했다. 서아가 마시멜로를 골랐다.
비가 왔다. 처음엔 텐트 위를 톡톡 두드렸다. 서아는 그 소리를 좋아했다.
새벽 두 시 이십구 분. 재우의 휴대폰이 비명을 질렀다. 대피 문자였다. 강물이 불었으니 즉시 대피하라고 했다.
밖은 강이 가까이 와 있었다.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톡톡이 아니라, 무언가 크게 밀려오는 소리.
재우는 서아를 안았다. 신발을 신길 틈이 없었다. 장작은 그대로 두었다. 불은 피우지 못했다.
주차장까지 물을 밟고 뛰었다. 종아리까지 찼다. 차에 오르자 서아가 유리에 얼굴을 붙였다. 야영장에 파란 경광등이 돌고 있었다.
“아빠, 이거 진짜 모험이다.”
재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은 다 나왔다고 했다. 아흔여섯 명. 다친 사람은 없다고. 재우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다행이라고. 다행인데.
장작이 떠올랐다. 비닐 아래 마른 장작. 지금쯤 물에 잠겼을 것이다. 불 한 번 못 붙인 채로.
서아가 재우의 어깨에 기댔다. 손전등을 꼭 쥐고 있었다. 아까 편의점에서 사 준 것. 켜지도 않은 것.
곧 잠들었다. 웃고 있었다.
재우는 팔이 저렸다.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에서 비가 내렸다. 서아에게는 오늘이 가장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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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경기도 시간당 50mm 넘는 ‘물폭탄’…도로 침수 등 18건 안전조치 — 뉴스핌, 2026년 7월 18일
한 줄 요약: 2026년 7월 17~18일 경기 북부 폭우로 파주 야영장 40곳에 새벽 대피명령이 내려져 아흔여섯 명이 강가를 빠져나온 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작가의 말
뉴스는 “아흔여섯 명 대피, 인명피해 없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저는 그 숫자 안의 한 사람을 찾고 싶었습니다. 같은 밤을 아빠는 잃어버린 모닥불로, 딸은 인생 최고의 모험으로 겪었다는 것 — 그 어긋남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다행이라는 말과 다행인데라는 말 사이, 팔이 저려도 움직이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