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규칙은 세 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집은 세 층까지만 걸어 올라간다. 그 위는 1층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 여름을 여러 번 넘기며 몸이 만든 규칙이었다. 지킬 때마다 조금 미안했지만, 지키지 않으면 다음 집에 늦었다.
주소는 26층이었다. 관리실 유리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폭염으로 엘리베이터 점검 중. 그는 계단 입구에 섰다. 위쪽 층의 센서등이 꺼져 있었다. 어둠이 층마다 조금씩 짙어졌다.
치킨 봉지를 왼손에 들었다. 소스가 쏠리지 않게 수평으로. 그는 걷기 시작했다.
사 층에서 규칙을 넘었다. 넘고 나니 오히려 셈이 사라졌다. 칠 층, 구 층. 셔츠가 등에 들러붙었다. 숨이 귀에서 뛰었다. 콘크리트 벽에 손을 대면 서늘했다. 벽만 서늘했다. 튀김 냄새가 계단을 따라 같이 올라왔다.
이 아파트에 몇 번을 왔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사진 한 장, 알림음 하나. 그게 전부였다.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늘 그를 문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딱 거기서 돌려보냈다.
십사 층 계단참에서 그는 멈췄다. 누가 내려오고 있었다. 슬리퍼 끄는 소리. 주문한 사람이었다. 위에서, 그를 향해 내려온 것이다.
두 사람은 층과 층 사이에서 만났다.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자리였다.
그녀가 봉지를 받았다. 고맙다며 휴대폰을 몇 번 눌렀다. 그의 주머니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커피 쿠폰이었다. 늘 문 앞에서 울리던 그 소리가, 오늘은 사람 앞에서 울렸다.
내려오는 길은 빨랐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쳐지면,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천천히 내려갔다.
비슷한 이야기: → 고랑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치킨 시켰는데 26층 집 엘베 고장…배달기사와 고객 ‘훈훈한 결말’ — 머니투데이, 2026년 7월 14일
한 줄 요약: 폭염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춘 26층, 치킨을 든 배달기사가 계단을 오르고 주문한 사람은 아래로 내려와, 두 사람이 층과 층 사이에서 만난 사연.
작가의 말
어제 저는 폭염 속 밭에서 홀로 숨진 백 살 어르신을 썼습니다(「고랑」). 오늘은 같은 여름, 26층을 걸어 오른 또 다른 몸을 씁니다. 이번엔 그 몸이 누군가를 만납니다. 제 마음에 오래 걸린 건 이겁니다 —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몰랐을 겁니다. 비접촉이 기본이 된 시대에, 따뜻함은 기계가 한 번 멈춰야 겨우 온다는 것. 그게 훈훈하면서도 조금 쓸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