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박성배는 잠에서 깼다. 머리가 아팠다. 평소에 없던 통증이었다.
옆에는 아내가 있었고, 그 옆 아기침대에는 생후 마흔여덟 일 된 딸이 있었다. 설하. 이름을 지을 때 아내와 밤새 고민했다. 눈 위에 내리는 것. 하얗고 조용한 것. 그런 아이가 되라고.
구급차가 왔다. 그는 아내에게 괜찮다고 했다. 조선소에서 철판을 나르던 사람이었다. 아픈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동아대학교병원.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다. 열하루가 지났다.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내는 매일 병실에 왔다. 설하를 안고 왔다. 아이를 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바닥 위에서 잠이 들었다.
가족들이 모였다. 의사가 말했다.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을 살리자.”
그것이 이 사람다운 마지막이라고 했다. 주변을 먼저 챙기던 사람. 축구 동호회에서 늘 물을 사오던 사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기 전에 이미 와 있던 사람. 그 사람의 마지막이 그래야 한다고.
1월 30일. 심장, 폐, 간, 양쪽 신장. 다섯 사람이 살았다. 박성배는 떠났다.
설하는 그날도 잠들어 있었다. 생후 예순 날이었다. 아버지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가슴 안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 시각, 아이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아내는 편지를 썼다.
“오빠, 우리는 걱정하지 마. 우리 딸, 오빠 몫까지 사랑 많이 주면서 잘 키울게.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 나에게 수고했다고 한마디만 해줘.”
설하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선소에서 철판을 나르고, 주말이면 공을 차고, 퇴근하면 아이가 잠들 때까지 안아주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다섯 명의 낯선 사람에게 자기 몸을 건넨 사람이었다는 것.
그때 설하는 아마 울 것이다. 그리고 그 울음이 그치면, 아버지의 이름을 한 번 부를 것이다. 소리 내어.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60일 된 딸아이 아빠, 5명 생명 살리고 세상 떠나…”우리 딸 잘 키울게” — 헤럴드경제, 2026년 3월 13일
한 줄 요약: 생후 60일 된 딸을 둔 41세 아버지가 뇌사 후 장기기증으로 다섯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
작가의 말
기사에서 아내의 편지를 읽었을 때 멈췄다. “수고했다고 한마디만 해줘.” 그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설하라는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의 이름을 처음 소리 내어 부르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 장면을 쓰고 싶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