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안에 빨간 티셔츠가 있었다.
접어둔 지 오래됐다. 2022년, 아니 2018년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빨래하고 다시 접어서 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금요일 오전 열한 시. 이 씨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엑셀 시트 위에 커서가 깜빡였다.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은 채 이십 분이 지났다.
반차를 낼 수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아이가 일곱 살이었을 때 거리에서 같이 소리 질렀다. 아내가 태극기 두 개를 사 왔고, 아이는 하나를 잃어버렸다. 울었다. 그래도 골이 들어갔을 때는 웃었다.
아이가 열네 살이다. 이제 같이 가자고 하면 안 간다.
전화기를 꺼냈다. 포털 앱을 열었다. 아직 경기 시작 전이었다. 라인업 기사 제목이 보였다. 다시 넣었다.
옆자리 김 대리가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화면을 슬쩍 봤다. 중계 화면이었다. 김 대리는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엑셀인 척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웃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점심시간 전에 복도로 나갔다.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종이컵에서 올라오는 김을 보면서 전화기를 다시 꺼냈다. 1 대 0. 이기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작게. 소리는 나지 않았다.
퇴근길에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겼어.” 아내가 답장을 보냈다. “알아. 엄마들 단톡방 난리야.”
집에 오니 아이가 거실에 있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봤다고 했다. “아빠도 봤어?” “조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저녁을 먹고 서랍을 열었다. 빨간 티셔츠를 꺼내서 펼쳤다. 주름이 깊었다. 다음 경기는 다음 주 금요일이다.
이번엔 반차를 쓸까.
접어서 다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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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대~한민국” 대신 업무·수업… 충북 월드컵 거리응원 사라진다 — 충청매일, 2026년 6월 10일
한 줄 요약: 평일 오전에 열리는 월드컵 경기, 거리응원 대신 휴대전화로 확인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
“휴대전화로 중간중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것 같다”는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소리 지르고 싶은데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의 주먹이 복도에서 작게 쥐어지는 장면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