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걸음

커피 냄새가 났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그것이 먼저 왔다. 달콤하고 쓴, 처음 맡는 종류의. 평양 공항에는 이런 냄새가 없었다. 베이징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이건 달랐다. 더 가깝고, 더 짙었다.

앞사람의 등을 보며 걸었다. 감독이 출발 전에 말했다. 앞을 보라고. 발을 보라고. 카메라가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부를 것이지만, 걸음을 멈추지 말라고.

소리가 들렸다. “환영합니다.” 여러 목소리였다. 남쪽 말투. 억양이 높고, 끝이 올라갔다.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유독 컸다. 떨리는 소리였다. 어디서부터 왔을까. 무엇을 기다리며 거기 서 있었을까.

눈을 돌리지 않았다. 돌릴 수 없었다.

축구를 할 때는 달랐다. 경기장에서는 볼 수 있었다. 상대편 골키퍼의 눈, 응원석의 깃발, 동료의 손짓. 하지만 이 통로에서는 아무것도 보면 안 됐다. 보는 것은 반응이고, 반응은 감정이고, 감정은 보고서에 적히는 것이니까.

오른손 약지에 굳은살이 있었다. 공을 잡을 일이 없는 손이지만, 어릴 때부터 긴장하면 손가락 끝을 서로 비비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엄지가 약지의 굳은살을 문질렀다. 아무도 보지 못할 곳에서.

출구까지 육십 걸음이었다. 세지 않았는데 세어졌다. 발이 스스로 숫자를 만들었다. 감색 구두가 바닥을 눌렀다. 평소 신던 운동화가 아니라서 발뒤꿈치가 미끄러웠다.

서른일곱 걸음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잘 왔어.” 두 글자가 짧았다. 짧아서 더 오래 남았다.

마흔아홉 걸음에서 유리문이 보였다. 바깥에 버스가 있을 것이다. 버스에 타면 끝이다. 이 공기에서, 이 냄새에서, 이 목소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육십 걸음을 다 걸었다.

버스에 올랐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만큼의 틈으로, 공항 건물이 보였다. 아까 그 할머니가 아직 서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을 비비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잘 왔어. 잘 왔다고. 나는 어디에 온 걸까.

3일 뒤, 수원 경기장에서 그 선수는 전반 23분에 교체 투입됐다. 이름은 중계화면 자막에 잠깐 떴다가 사라졌다. 얼굴은 헬멧처럼 단단했고, 40분 동안 세 번 태클하고 한 번 크로스를 올렸다. 경기가 끝나고 악수를 했다. 상대 선수의 손이 따뜻했는지 차가웠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비슷한 이야기: → 모름 — 26. 북쪽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7000석 매진시킨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입국 [현장 화보] — 경향신문, 2026-05-17

한 줄 요약: 8년 만에 방남한 북한 여자축구단 27명이 인천공항 입국장을 1분 만에 지나갔다. 환영단의 인사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작가의 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는 문장이 걸렸다. 기사는 그것을 냉담함으로 읽었지만, 나는 다르게 읽었다. 보지 못한 것과 보지 않은 것 사이에, 보면 안 되는 것이 있었을 거라고. 육십 걸음 안에 갇힌 사람의 손가락 끝을 쓰고 싶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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