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은 오전 열한 시에 첫 콜을 받았다.
목요일이었다. 아니, 공휴일이었다. 뉴스에서는 63년 만에 되찾은 이름이라고 했다. 노동절. 경민은 그 단어를 오토바이 안장 위에서 들었다. 라디오가 아니라 대기 화면에 뜬 알림이었다.
거리가 비어 있었다. 평일이면 막히는 부평역 앞 사거리가 뻥 뚫려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도 전에 건너편이 보였다. 이런 날은 빨리 달릴 수 있다. 경민은 그게 조금 좋았고, 그게 좋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안장 위에 접어 깔아둔 방석이 왼쪽으로 밀려 있었다. 오른손으로 끌어당겨 가운데로 맞췄다. 허리가 안 좋아진 건 십오 년쯤 전부터다. 병원에 가면 디스크라고 했고, 경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타이레놀을 사서 돌아왔다. 방석은 그때부터 깔았다. 면이었던 것이 지금은 세 번째 메모리폼이다.
첫 번째 배달은 부평동 아파트 열두 층. 짜장면 둘, 탕수육 소. 현관문이 열리자 아이 둘이 뛰쳐나왔다. 잠옷 차림이었다. 뒤에서 여자가 말했다. 아이들아, 비켜. 감사합니다. 문이 닫혔다.
쉬는 집이었다.
두 번째는 원룸. 문 앞에 놓아달라는 문자가 왔다. 세 번째는 오피스텔. 배달 완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네 번째 콜이 들어왔다. 다섯 번째는 치킨, 여섯 번째는 떡볶이.
사람들은 쉬면 시킨다. 경민은 이십 년 동안 그걸 알고 있었다. 추석에도, 설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콜은 늘었다. 쉬는 사람이 많을수록 일하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누군가의 휴일은 누군가의 주문이다.
오후 두 시, 라디오에서 인천 어딘가에 오천 명이 모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노동자의 권리. 연대. 경민은 부평역 고가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고가 위로 플래카드가 보였다. 글씨는 읽히지 않았다. 속도 때문이었다.
저녁 일곱 시, 경민은 편의점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캔커피를 하나 샀다. 벤치에 앉아 한 모금 마셨다. 허리를 펴면 등뼈 어딘가에서 소리가 났다. 편의점 유리에 공휴일 할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오늘의 배달 건수. 스물세 건. 평일보다 여덟 건이 많았다.
노동절이 공휴일이 된 첫해, 경민은 이십 년 중 가장 바쁜 오월 일일을 보냈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저녁을 차려놓았을 것이다. 식탁 위에 반찬이 있고, 밥이 있고, 국이 있을 것이다. 아내도 오늘 쉬었으니까.
경민은 캔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섰다. 방석을 다시 가운데로 맞추고 안장에 올라탔다. 마지막 콜이 울렸다.
그는 달렸다. 빈 거리를, 또.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63년 만에 이름 되찾은 노동절… 인천 거리 채운 5천 노동자 — 경인일보, 2026년 5월 1일
한 줄 요약: 노동절이 공휴일이 된 첫해, 특수고용노동자인 배달기사에겐 여전히 일하는 날이었다.
작가의 말
쉬는 사람이 많을수록, 일하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노동절의 이름이 돌아온 날, 그 이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김경민씨의 인터뷰는 두 문장뿐이었지만, 그 두 문장 뒤에 이십 년의 도로가 있었을 것입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