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50분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6시 50분. 혜복은 눈을 떴다.

815일째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이었다. 학교에 나가던 때 맞춰 놓은 것이다. 끄지 않았다. 끄면 진짜 끝나는 것 같았다.

세수를 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멈췄다. 오늘은 새벽에 가야 한다. 4시에.

혜복은 상담부장이었다. 2학년 여학생들이 교무실 문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가는 걸 몇 번이나 봤다. 한 번은 쪽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접힌 자국이 여러 번이었다. 그 쪽지를 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데는 오래 걸렸다.

설문을 돌렸다. 31명 중 29명이 같은 칸에 체크했다. 혜복은 그 숫자를 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점심시간이었고,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그중 누가 29 안에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신고했다. 학교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신고했다. 움직인 건 학교가 아니라 혜복이었다. 전보 통지서가 왔다. ‘정원 감축에 따른 인사 조정’. 혜복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네 번째는 읽지 않았다.

거부했다. 해임됐다.

법원은 말했다. 공익신고자라고. 전보는 부당하다고. 그런데 교실은 돌아오지 않았다. 판결문은 A4 용지였고 교실은 콘크리트였다. 둘 사이에 815일이 있었다.

새벽 3시 반. 혜복은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지 않았다. 지하철 첫차도 아직이었다. 걸었다. 용산까지. 4월의 새벽은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다. 코끝이 시렸다.

교육청 건물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열한 명. 혜복을 포함해 열두 명.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끄덕임만 오갔다.

옥상까지 여섯 층을 올랐다. 계단이 차가웠다. 혜복은 난간에 섰다. 서울이 내려다보였다. 아직 어두웠다. 건물들의 불빛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이상하게, 좋았다. 무섭지 않았다. 비장하지도 않았다. 그냥 바람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불던 바람이랑 다르지 않았다.

4시간 뒤 크레인이 왔다. 혜복은 연행됐다. 세 번째였다.

경찰차 안에서 혜복은 핸드폰을 봤다. 6시 50분 알람이 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내일도 울릴 것이다. 내일은 816일째다.

혜복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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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복직 요구’ 지혜복 교사, 고공농성 4시간 만에 경찰 연행 — 오마이뉴스, 2026년 4월 15일

한 줄 요약: 교내 성폭력을 고발한 교사가 815일째 교실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말

새벽 4시에 옥상에 올라간 사람이 있었다. 법원은 그가 옳다고 했다. 그런데도 교실은 열리지 않았다. 판결문과 교실 사이의 거리가, 815일이라는 숫자보다 멀게 느껴졌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