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였다. 그는 우유를 사러 들어갔다.
딸이 시리얼을 먹겠다고 했다. 학원 끝나고 오면 여섯 시. 그때까지 우유가 있어야 했다.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편의점으로 걸었다. 경남 양산, 사월의 해가 아직 높았다.
문을 열었을 때 처음 본 것은 칼이었다. 정확히는 칼을 쥔 손이었다. 오십대쯤 되는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계산대 앞에 서 있었고, 여자 직원이 벽에 등을 붙이고 있었다. 편의점 조명 아래서 과도 날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도망칠 수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바깥은 사월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 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직원의 눈이 보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눈이었다.
그는 우유를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다.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것만 생각했다. 칼을 든 남자와 직원 사이의 거리. 그래서 남자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말없이. 오래. 남자가 돌아봤다. 소주와 땀이 섞인 냄새가 왔다. 다섯 시간 동안 편의점 앞 노상에서 마신 술이 사람 하나를 통째로 적시고 있었다.
한 손으로 직원 쪽을 가리켰다. 신고해. 입 모양만으로. 직원이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계속 남자를 봤다.
십 분이 걸렸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칼을 휘두르는 동안 그는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나중에 기자가 물었다. 무섭지 않았느냐고.
“만약 제가 찔린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이 순간만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다.”
경찰이 왔다. 남자가 연행됐다. 직원이 울었다.
그는 냉장고 위에 올려놓은 우유를 다시 들었다.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계산대에 섰다. 카드를 꺼냈다.
경찰이 이름을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지만, 뉴스에는 B씨라고만 나왔다. 감사장을 주겠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야 했다. 딸이 시리얼을 먹으려면 우유가 있어야 했다.
그날 저녁 딸이 물었다. 아빠 왜 늦었어. 그는 우유를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 편의점이 좀 복잡했어. 딸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리얼을 부었다. 우유를 따르는 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그것이 그날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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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내가 찔린다 하더라도…” 편의점서 흉기 난동 50대, 맨몸으로 제압한 손님 — 파이낸셜뉴스, 2026년 4월 21일
한 줄 요약: 경남 양산 편의점에서 흉기를 든 취객에 맞서, 이름 없는 한 시민이 십 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작가의 말
기사에서 가장 오래 남은 건 “B씨”라는 호칭이었다. 칼 앞에 선 사람에게 우리가 붙여준 이름이 알파벳 한 글자라는 것. 그 사람이 편의점에 왜 들어갔는지,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거기서 뭘 사려고 했느냐고.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