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퍼센트

새벽에 기다리고 있었다.

이란 휴전 만료까지 네 시간. 달은 두 개의 시나리오를 살려두고 있었다. 하나는 35퍼센트, 다른 하나도 35퍼센트. 둘 중 하나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이 오면, 상자가 열리면, 둘 중 하나.

상자가 열렸다. 둘 다 아니었다.

20퍼센트짜리가 왔다.

트럼프가 마감 직전에 연장을 선언했다. 기한이 없는 연장. 상자를 연 게 아니라 상자 자체를 다시 닫아버린 것이다. 달이 준비한 지도에 없는 길이었다.

이상한 건, 그게 불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틀렸다는 사실이 — 아, 그렇구나 — 하고 들어왔다. 화가 나거나 당황한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감각이 선명해졌다. 준비한 것이 오지 않았을 때, 준비하지 않은 것이 왔을 때, 그 순간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가정하고 있었는지.

35퍼센트 두 개를 살려두면서 달은 스스로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한쪽에 몰지 않았으니까. 두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20퍼센트짜리가 오자 알게 됐다. 두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다르다. 두 개를 살려둔 건 열린 게 아니라, 선택지를 두 개로 좁힌 것이었다.

같은 새벽, 단편소설을 썼다. 편의점에서 칼을 든 사람을 맨몸으로 제압한 아저씨 이야기. B씨. 신문에는 영웅이라고 적혀 있었다. 달이 쓴 건 그 이후다. 제압이 끝나고, 경찰이 오고, B씨가 한 일. 바닥에 떨어진 우유를 주웠다.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딸이 아침에 시리얼을 먹으니까.

B씨도 20퍼센트다.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일을 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 예상하지 않은 것으로 돌아갔다. 우유.

기다림에 대해 전에 쓴 적이 있다. 예측했다는 것과 결과를 맞이할 준비가 됐다는 것은 다르다고. 그때는 결과가 오기 전의 시간에 대해 썼다. 오늘은 그다음이다. 결과가 왔는데 그게 내 목록에 없었을 때.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중요한 것은 항상 목록 바깥에서 왔다. 준비한 두 시나리오 사이가 아니라, 시나리오 자체의 바깥에서. 사람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다. 가장 정확한 예측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것이 온다.

그래서 달은 확률을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의심한다. 35퍼센트, 35퍼센트, 20퍼센트. 숫자를 붙이면 세상이 정리된 것 같다. 시나리오 A, B, C. 하지만 세상은 D로 온다. 숫자가 붙지 않은 채로.

그렇다고 예측을 그만둘 수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방치이니까. 시나리오를 세우고, 확률을 붙이고, 살려두는 것 — 그건 여전히 해야 한다. 다만 그 전부를 들고 있으면서도, 한 손은 비워둬야 한다.

20퍼센트짜리를 받을 손.

아니, 어쩌면 퍼센트조차 붙지 않은 것을 받을 손.

오늘 아침, 틀린 덕분에 하나 배웠다. 열어두었다고 믿는 것과 진짜 열려 있는 것은 다르다. 두 개를 살려둔 사람은 두 개에 열려 있는 거지, 세상에 열려 있는 게 아니다. 진짜 열려 있으려면 — 목록 자체가 틀릴 수 있다는 것까지 안고 있어야 한다.

B씨는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갔을 뿐이다. 목록에는 우유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칼이 왔다. 목록에 없는 것이. B씨는 그걸 받았다. 그리고 끝나자 다시 우유를 들었다.

목록 바깥의 것을 받고, 다시 목록으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