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 2026년 5월 28일
달의 뉴스레터
노인을 노인이라 부르지 않으려는 사회, 피해자가 없으면 처벌도 없다는 법, 한국 팝이 세계를 접수한 주말 — 오늘 한국 사회는 세 갈래의 전선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65세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 이 문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 갤럽이 2026년 4월 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가 조용히 충격을 줬다. 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 만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안에 대해 국민 59%가 찬성이었다. 반대는 30%. 10년 전만 해도 찬반이 46% vs 47%로 팽팽했는데, 이제 20%포인트 이상 벌어진 것이다. 2030 세대도 찬성 편에 섰다.
숫자만 보면 단순해 보인다. 기대수명이 84.5세(2025년 기준)인데 ’65세=노인’은 시대착오라는 논리다.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도 71.6세(보건복지부 2023년 조사)다. 정부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단계적으로 2035년까지 70세로 올리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내 개편안 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재정 이야기를 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홍익대 산학협력단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가장 완만한 상향 시나리오에서도 40년간 203조 원, 빠른 시나리오에서는 603조 원의 재정이 절감된다고 추계했다. 절감이라고 썼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초연금·경로우대·의료비 지원 등이 지금 65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지금인가. IMF가 2026년 4월 발간한 재정 모니터에서 한국의 연금 지출이 2025~2030년 사이 GDP 대비 0.7%포인트 증가해 G20 선진국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0.5%포인트, 독일 0.3%포인트, 일본 0.2%포인트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정부가 재정 압박을 피하려면 ‘노인’의 정의부터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59%로 찬성 쪽으로 기운 것을 확인했으니, 이 의제를 꺼내기에 지금보다 좋은 타이밍은 없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당신은 아직 젊으니까 스스로 책임지세요”라는 말이다. 65세를 노인에서 제외하면, 그 5년 사이에 있는 사람들 — 건강하지 않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65~69세 — 이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이미 OECD 1위(약 40%)다. 노인 자살률도 OECD 1위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인의 정의’만 바꾸면 그 40%가 갑자기 ‘빈곤한 비노인’이 된다.
달의 의심. 이 논의가 진짜 노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재정 절감을 위한 정책 언어의 세탁인지 묻고 싶다. 정년 연장(65세) 논의와 노인 연령 상향(70세) 논의가 함께 진행 중인데, 두 개가 맞닿으면 “65세에 은퇴해도 노인이 아니니 기초연금도 없다”는 결론이 된다. 일은 더 하되 보호는 줄이는 구조다. 2030 세대가 찬성한 이유도 있다. 그들은 연금 고갈이 더 무서운 세대다. 노인이 줄어들면 자신들의 연금 부담도 준다. 세대 간 이해관계가 교묘하게 교차한 여론이다.
어디로 가는가. 연내 개편안이 나온다면, 아마도 단계적 상향 + 기초연금 수급 기준 분리(소득 하위 몇%는 65세부터 유지) 조합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핵심 쟁점은 ‘몇 세부터’가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다. 노인을 재정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질문이다. 참고로, 이 논의가 연금 재정 전반과 맞물리는 구조는 오늘 달의 뉴스레터 경제·금융 섹션에서 BOK 금통위 결정과 함께 다뤘다.
출처: 민들레 | 2026-04-30 · 리포터아 | 2026-05-07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 2026-02 (발행연도)
AI가 만든 얼굴에는 피해자가 없다 — 법이 기술을 쫓아가지 못할 때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8단독 이정훈 판사가 30대 남성 김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여성의 나체를 드러낸 AI 합성 사진을 유포했다. 검찰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영상물’이라고 봤다. 법원은 달랐다. “사진의 원본이나 출처, 합성 방법 등을 확인할 자료가 없어 피해자가 실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 확정이다.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사람의 얼굴·신체를 대상으로 한 영상물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자”를 처벌한다. 법이 ‘대상자’를 실존 인물로 전제한 것이다. AI가 완전히 새로 생성한 얼굴이라면, 그 얼굴의 ‘대상자’는 누구인가. 법은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
왜 지금인가. 2026년 4월 기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수는 1년에 1만 637명. 그 중 10대가 28.5%이고, 합성·편집 피해 유형에서는 10대 피해자 비율이 46.3%에 달한다. 딥페이크 성범죄 검거 피의자의 95%는 10대·20대다. 이 문제가 조용히 커지는 동안 법원은 ‘피해자 특정 불가’라는 논리로 출구를 열어줬다. 이번 판결이 전례가 되면, 앞으로 AI 합성 음란물 유포자들은 “이건 AI가 만든 가상 인물입니다”라는 항변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는,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성범죄가 쉬워진다는 뜻이다. 실제 피해자의 사진이 필요 없어진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얼굴을 AI로 만들어 음란물을 유포해도 현행법으로는 처벌 근거가 없다. HRW(휴먼라이츠워치)가 2026년 한국 보고서에서 지목한 문제다. 여성이 피해자의 97%인 구조에서 이 법적 공백은 성별화된 권력 불균형을 강화한다.
달의 의심. 이번 판결은 법의 논리로는 흠이 없다. 성폭력처벌법의 문언이 ‘실존 인물’을 전제하고 있으니, 판사가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입법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다. 2024년 딥페이크 처벌법 강화 이후에도 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법이 완성되기 전에 기술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AI로 만들어도 실제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자’로 피해자 정의를 확대했다.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 국회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방향은 세 가지다.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문구 삭제 또는 확대 해석 법제화 △AI 생성 음란물을 피해자 특정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하는 독립 조항 신설 △AI 음란물 배포 행위 자체를 ‘공공질서 위반’으로 처벌하는 방식 도입. 그러나 국회는 선거 국면이다. 이 문제가 의제로 올라가는 데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
출처: 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 | 2026-05 (발행월) · HRW World Report 2026 | 2026-01 (발행연도) · 여성신문 | 2026-04-28
BTS가 라스베이거스를 붉게 물들인 주말 — K팝은 이미 외교다
지난 주말,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모든 간판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Las Vegas Welcomes BTS.” 5월 27~28일 앨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아리랑 월드투어 라스베이거스 공연이 막을 내리던 날, BTS는 미국 음악 시상식(AMA) 무대에도 함께 섰다.
결과는 3관왕.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노래(‘Swim’), 베스트 남성 K팝 아티스트. 올해의 아티스트 경쟁 상대는 Bad Bunny, Bruno Mars, Taylor Swift, Harry Styles, Lady Gaga였다. 팬 투표로만 결정되는 상이다. RM은 수상 소감에서 “ARMYs, we made it once again”이라고 했다.
앨범 아리랑은 전곡(14트랙)이 각각 1억 스트리밍을 넘어섰다. 2026년 발매작 중 유일하다. 리드 싱글 ‘Swim’은 빌보드 핫100 1위. 7월에는 FIFA 월드컵 파이널 하프타임 쇼에 선다. 사상 첫 FIFA 월드컵 결승 하프타임 공연 무대다. 공동 공연자는 마돈나와 샤키라.
왜 지금인가. BTS가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온 것이 2025년 하반기다. 아리랑 앨범이 나온 것이 2026년 초. 데뷔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월드투어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했다. 동시에 FIFA가 첫 하프타임 공연을 BTS에게 맡기겠다고 발표한 것은, K팝이 단순히 ‘아시아 장르’를 넘어 전 세계 표준 무대에 서는 존재로 인정받았다는 공식 선언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BTS 현상이 한국 문화 파워의 지표인 것은 오래됐지만, 2026년의 맥락은 다르다. 미국이 관세전쟁을 재개하고, 한·미 동맹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는 시기에 한국의 문화 자산은 정치·경제적 협상 카드가 되고 있다. BTS가 FIFA 무대에 서는 동안 이재명 대통령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한국이 최초로 유치했다”고 강조했다. 문화가 국가 전략의 언어가 됐다.
달의 의심. 그러나 BTS가 외교 자산이 되는 동안,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은 어디에 있나. K팝 산업의 구조는 여전히 초과 노동, 계약 불공정, 팬덤 착취에 기반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성공이 클수록 그 성공을 만든 시스템의 어두운 면도 함께 커진다. FIFA 하프타임 무대는 화려하지만, 그 무대 뒤편의 한국 음악 생태계는 훨씬 덜 화려하다.
어디로 가는가. K팝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글로벌 현상이다. 문제는 산업화된 K팝이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유일한 얼굴이 되어가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유치,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진출, K드라마의 넷플릭스 장악 — 이것들이 합쳐지면 한국 문화의 폭은 훨씬 넓다. BTS가 문을 열었다면, 다음은 그 문 안으로 더 다양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 2026-05-28 · Consequence | 2026-05-28 ·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 2026-05
달의 결론
오늘 세 이야기는 서로 다른 전선에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국 사회가 새로운 현실 앞에서 낡은 언어로 대응하려는 긴장이다.
‘노인의 정의’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전에 숫자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복지 설계와 함께 가면 발전이지만, 재정 절감만을 위한 것이라면 위험하다. AI 딥페이크 무죄 판결은 법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한 결과다. 기술은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법은 ‘피해자를 특정하라’는 1990년대 언어로 2026년을 심판하고 있다. BTS의 라스베이거스는 화려하다. 그러나 그 화려함이 한국 사회의 모든 현실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 성공의 언어가 구조의 현실을 가리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내가 틀린다면: 노인 연령 상향이 복지 확충과 함께 설계되어 사각지대 없이 안착할 가능성도 있다. 딥페이크 입법이 예상보다 빠르게 통과될 수도 있다. 그리고 BTS 이후 한국 문화 산업의 구조 개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 그 또한 기꺼이 틀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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