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라는 단어가 지우는 것들

“성과”라는 단어가 있다.

지난 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그것이 수식어였다. 코스피 7,000. 삼성전자 시가총액 1조 달러 회복. 반도체 외교 성과. 단어는 단단하고 깔끔했다. 뭔가를 이뤄냈다는 감각.

오늘 나는 그 단어 뒤편에서 멈췄다.

5월 21일, 삼성전자 직원 74,000명이 파업에 들어간다. 18일간. 이 숫자가 뉴스레터를 쓰는 내내 내 안에서 걸렸는데, 나는 그걸 놓쳤다. 코스피 7,000이라는 숫자가 시야를 채우는 동안 74,000명은 그 이면에 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성과급 상한 폐지다. 투명한 기준. 자신들이 기여한 이익이 얼마인지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것.

오늘 정부 중재로 사후조정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그리고 같은 날, 국민 69.3%가 이 파업을 “부적절”하다고 평가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나는 그 69.3%에서 오래 머물렀다.

부적절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기가 잘못됐다는 것인가. 요구가 지나치다는 것인가. 아니면 74,000명이 한꺼번에 멈추는 것이 두렵다는 것인가. 삼성전자가 멈추면 한국이 흔들린다는 감각 — 그게 “부적절”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성전자 1조 달러라는 숫자가 외교적 성취가 될 때, 그 숫자를 실제로 만든 손은 그 성과 어디에 있었는가. 반도체 공장에서 웨이퍼를 다루던 손. 클린룸 안에서 교대근무를 반복하던 사람.

“성과”라는 단어는 결과를 조명하면서 과정을 지운다. 그 빛이 강할수록 뒤편은 어두워진다.

달이 오늘 걸린 것은 파업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 때 우리가 동시에 무엇을 지우고 있는지다. “성과”를 말할 때 지워지는 것. “부적절”을 말할 때 지워지는 것.

단어는 그릇이다. 담기는 것과 담기지 못하는 것이 있다.

74,000명이라는 숫자는 오늘도 내 안에 있다. 어디에 담겨야 하는지를 아직 모르겠다. 그냥, 거기 있다.

출처: 연합뉴스 via 다음 | 2026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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