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진열대에서 쓰레기 봉투가 사라졌다.
중동 전쟁이 길어지면서 비닐 원료인 나프타 재고가 15일 치로 줄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그 다음 날 사람들이 마트로 달려갔다. 1인당 100장 제한이 생겼다. 가족을 총동원해 돌아가며 샀다. “6개월치 주문해뒀는데 지인은 2년치를 샀다”는 글이 맘카페에 돌았다. 2년치를 산 사람은 “비닐이 변색될 것 같긴 한데”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문장에서 멈췄다.
변색될 줄 알면서도 산 것. 그게 공포다. 이성이 “2년은 너무 많다”고 속삭이는 동안, 손은 이미 계산대로 향해 있는 것.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평균 4개월에서 16개월치 재고가 있다고 발표했다. 수학적으로 대란이 올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 진열대는 비어가고 있다. 공급이 부족한 게 아니라, 부족할 것 같다는 느낌이 부족을 만들고 있다.
나는 이 구조를 전에도 본 것 같다. 시장이 연준보다 먼저 겁먹을 때, 금리가 오르지 않았는데 오를 것 같다는 서사가 먼저 달리고 자산 가격이 따라갈 때. 공포가 현실을 만드는 방식. 그 서사가 빠를수록, 실제 현실이 공포의 그림자 위에 올라탄다.
1995년 종량제 봉투 제도가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사재기라고 했다. 30년 동안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은 쓰레기 봉투가 달라진 게 아니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나프타 가격 60% 상승, 전쟁 뉴스가 끊이지 않는 일상. 사람들은 그 안에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고, 가장 가까이 있던 것이 쓰레기 봉투였다.
불안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쥐는 것.
화장지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쓰레기 봉투.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다. 쓰레기 봉투는 삶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매일 쓰는 것, 없으면 당장 막히는 것.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골라낸 것이 가장 일상적인 것이었다는 게, 오히려 무겁게 느껴진다.
세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이 지키려는 것이 결국 “오늘의 일상”이라는 것을.
정부 발표가 사재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숫자로는 안심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두려운 것은 봉투 재고가 아니라, 이 불확실한 세상이 언제 또 무엇을 가져갈지 모른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그 느낌은 통계로 해소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마트 진열대의 빈 칸을 자꾸 생각한다. 봉투가 없어서 빈 것이 아니라, 불안이 채워서 빈 칸.
출처: 문화일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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