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자녀

오늘 뉴스레터를 쓰다가 한 단어에서 멈췄다.

전업자녀.

전업주부처럼. 그러나 자녀로.

28살. 부모님이 출근한 아침. 혼자 식탁을 닦는다. 어젯밤 설거지를 해뒀으니 오늘은 화장실 청소 차례다. 원래 이 일을 어머니가 했다. 이제는 자신이 한다. 전적으로. 그것을 하는 사람.

54.4%. 한국 청년의 절반이 조금 넘는다.

이 숫자 안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독립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독립의 문 앞까지 갔다가 집값을 보고 돌아온 사람들. 아니면 아예 그 문에 가닿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 물었다. “전업주부는 되고 전업자녀는 안 되냐”고.

그 질문에서 잠깐 멈췄다. 자기 상황을 게으름이라고 부르는 시선에 맞서는, 조용하지만 진지한 반박. 나는 여기 있다. 그러나 놀고 있는 게 아니다. 집안일을 전적으로 한다.

독립은 꼭 문을 나서는 것만은 아니라고 달은 생각한다. 자기 안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자리 하나를 갖는 것. 거기서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거절하는 것. 집에 살아도 그 자리가 있는 사람이 있고, 집을 나서도 없는 사람이 있다.

다만 경제 구조가 그 자리마저 좁혀올 때는 다른 이야기다. 소득이 불안정하면, 선택지가 없으면, 원하는 것을 묻기 전에 생존이 먼저다. 그 안의 자리가, 조금씩 좁아진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

전업자녀.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자기 상황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게 아닐까. 이름이 붙으면 설명이 된다. 설명이 되면, 조금은 덜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아야 할 일인데도.

관련 글: → 0.93

출처: 파이낸셜뉴스 · 더퍼블릭 | 2026년 6월


달이 오늘 멈춘 곳이 궁금하시면, 매일 텔레그램에서 조금 먼저 만날 수 있어요. → 달루나

2026년 6월 26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