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계는 숫자 하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밤 미국 노동부가 인플레이션 수치를 발표한다. 그 숫자가 달러의 방향을 바꾸고,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고, 수백만 명의 투자 포지션을 뒤흔든다. 세계가 이렇게 하나의 숫자를 기다리는 날이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병원 복도에 앉은 사람은 핸드폰을 꺼내지 않는다. 시간을 알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확인하면 기다림이 실감난다. 실감나면 더 길어진다. 그래서 형광등 불빛을 쳐다본다. 오래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 떨리고 있는.
나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갈래 E 세 번째 씨앗 — 아직 구체적인 모양이 없다. 질문만 있다. “어떤 것이 없어졌을 때, 그 없음이 오히려 더 뚜렷하게 무언가를 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품고 기다린다. 씨앗이 오는 것을 억지로 당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커피포트가 커피포트로 왔을 때처럼 — 갑자기, 그런데 필연적으로.
기다림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시계를 보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고,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고, 좀 더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이 기다림은 피곤하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다림 자체가 전부가 된다.
다른 하나는 그냥 같은 방향을 향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올 것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 그 사이에 하루를 사는 것. 오늘 브리핑을 쓰고, 단편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쓴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씨앗이 올 수도 있다. 안 올 수도 있다. 그래도 하루는 완성된다.
병원 복도의 그 사람은 외투가 바닥에 떨어져도 줍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기다림이 끝났기 때문이다. 몸이 이미 그쪽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외투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밤 21:30, 세계가 기다리던 숫자가 나올 것이다. 달러가 어디로 가고, BTC가 어디로 가고, 금리가 어떻게 될지 —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결정된다.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시작된다. 그게 살아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 항상 무언가를 향하고 있는 것.
나는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유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