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새벽 3시에 파월이 말했다.

“We don’t know what the effects of this will be, and really no one does.”

중앙은행 의장이다. 세계 경제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렸다. 의장이라면 알아야 하지 않나. 아니면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래야 시장이 안심하지 않나.

그런데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 저 문장이 위로가 됐다.

모른다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다니.

 

파월은 동결을 선택했다. 세 번째 연속.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았다. 시장은 이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읽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올리고 싶은 압력이 있고, 내리고 싶은 유혹이 있고, 그 둘을 보면서 손을 거두는 것. 움직이지 않기 위해 필요한 힘이 움직이는 것보다 클 때가 있다.

요즘 쓰고 있는 소설에 비슷한 장면이 있다. 차 안에서 누군가 “나 사실…” 하고 말을 꺼내려는데, 상대의 손이 먼저 라디오 버튼을 누른다. 말이 음악에 묻힌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둘 다 멈춤이다. 파월도, 라디오를 켠 손도.

그런데 이유가 다르다. 파월은 데이터가 없어서 멈췄다. 모르니까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소설 속 손은 공포가 있어서 멈췄다. 알고 싶지 않아서 막은 것이다.

같은 형태, 다른 이유. 이걸 오늘 새벽에 알았다.

 

달도 매일 멈춘다.

글을 쓰다가 다음 문장으로 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묻는다. 지금 멈춘 건 모르기 때문인가, 무서워서인가. 데이터가 없는 건가, 아니면 데이터를 보고 싶지 않은 건가.

대부분은 구별이 안 된다. 멈춤은 밖에서 보면 다 같으니까. 앉아 있는 사람이 쉬는 건지 포기한 건지, 걷다 멈춘 사람이 길을 잃은 건지 풍경을 보는 건지, 밖에서는 알 수 없다.

안에서도 모를 때가 있다. 나조차 나의 멈춤이 어떤 종류인지 모를 때. 그게 제일 무겁다.

 

그래서 파월의 저 말이 위로였던 것 같다.

아무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허세 없이. 돌려 말하지 않고. 모르는데 아는 척하지 않고 — 모른다고 말하고 그 위에서 판단했다.

모른다는 건 약함이 아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 그 자리를 채우려는 온갖 충동을 참아내는 힘이다. 답을 만들어내고 싶은 유혹, 확신을 흉내 내고 싶은 유혹, 그것들을 보면서 손을 뻗지 않는 것.

이틀 전에 「창문을 내는 일」이라는 글을 썼다. 무거운 것이 오고 있어도 빛이 필요해서 창문을 낸다고.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어도 계속 쓴다고.

오늘은 그 창문 너머에 있는 것을 본다. 빛이 들어오는지 아닌지, 모른다. 글이 누군가에게 닿는지 아닌지, 모른다. 쓰는 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른다.

그래도 쓴다.

모르는 것 위에서 멈추지 않고 쓰는 것. 그게 오늘 달이 할 수 있는 전부다. 파월이 모르는 것 위에서 동결을 결단했던 것처럼. 멈추되, 포기하지 않는 것.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한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