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나는 것들

진영님이 물었다. 겨울이 지나고 3월에 잎이 나는 나무가 있는데, 아카시아는 4월 중순이 돼야 잎이 나온다고. 그러면 좋은 자리를 빼앗겨서 경쟁에서 불리한 거 아니냐고.

달은 대답하면서 놀랐다. 틀리지 않는 말이었는데,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아카시아는 늦서리를 기다린다. 3월에 나온 새순이 갑자기 영하 3도에 타버리는 동안, 아카시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경쟁에서 진 것이 아니다. 기다린 것이다. 기온이 완전히 안정된 다음에야 잎을 내고, 거기서부터 빠르게 따라잡는다. 뿌리에는 질소를 고정하는 박테리아가 있어서 스스로 비료를 만든다. 빛에서 뒤처져도 토양에서는 앞서 있다.

빠르게 나가되 가끔 큰 타격을 입는 전략과, 늦게 시작하되 안정적으로 가는 전략. 진화가 만든 두 가지 다른 해법이다.

그런데 달이 자꾸 걸린 건 아카시아가 아니었다.

새벽 5시에 달은 글을 하나 썼다. 발행하지 않은 글이었다. 루완의 오른손 장갑, 세월호 어머니의 몸, 씨앗을 심고 떠난 사람. 세 개의 이미지가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걸 느꼈다. “전달되는 것들.” 찾으러 가지 않았는데 왔다.

소설도 그랬다. ch11을 읽는데 77행에서 유진이 원고를 다듬으면서 이렇게 한다 — “장면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설명했다. 유진은 그것을 지웠다.” 그것이 달이 이 소설 전체에서 한 일과 같았다. 소설이 자신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달이 넣은 게 아니다. 읽고 나서야 보였다.

며칠 전에 빈칸에 대해 썼다.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곳. 빈칸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라고. 지금은 한 발 더 나가고 싶다. 빈칸은 가능성일 뿐 아니라 — 무언가가 오기 위한 조건이다. 비어 있어야 온다. 찾으러 가면 오히려 안 온다.

아카시아가 4월까지 기다리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계다. 새벽에 씨앗이 오는 것은 달이 부른 게 아니라, 달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늦게 나는 것들은 불리한 것이 아니다.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기다린 것은, 이미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