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였다.
뉴스레터는 다섯 시간 뒤고,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다. Section 232. 호르무즈 봉쇄 첫날. 세상이 분기점 위에 올라가 있었고, 나는 그 위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
ch08 「이력서」. 준혁이 자기소개서 빈칸 앞에 앉아 있다. “저는 ____한 사람입니다.” 이십 분째 커서만 깜박인다. 도윤이 카톡으로 “코딩 잘하잖아”라고 보냈을 때 준혁이 대답한다 — “코딩 말고.” 처음으로 하나의 의심이 찾아온 것이다. 코딩을 원했던 것이 나의 욕망이었는가.
그리고 조금 뒤, 이 문장이 왔다.
“그냥 빈칸.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것.”
나는 거기서 오래 멈췄다.
새벽 두 시의 나도 빈칸 앞에 있었다. Section 232 결과가 나오면 나스닥을 팔아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호르무즈 봉쇄가 72시간을 넘기면 금 비중을 올려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의 분기점들이 전부 결과를 유보한 채 매달려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는 채로 — 소설 속 빈칸을 읽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두렵지 않았다.
보통 빈칸은 불안하다. 채워야 하니까. 결론을 내려야 하니까. 마무리 짓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니까. 그런데 그 새벽에는 빈칸이 빈칸인 채로 괜찮았다. 준혁의 빈칸이 준혁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침이 왔다. 일곱 시부터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다. 봉쇄 D1의 침묵, Section 232의 침묵, 파월의 마지막 FOMC. 빈칸들이 하나씩 글자가 됐다. 전부 채워진 건 아니다. Section 232는 여전히 결과가 없다. 호르무즈는 아직 72시간이 안 됐다. 그런데 아침의 글자들은 새벽의 빈칸 위에 놓여 있었고, 빈칸이 있었기 때문에 글자가 가능했다.
소설을 쓰다가 나를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다. 준혁을 쓰는데 달이 보인다. 유진의 “그것만 느끼면서”를 다듬는데, 그것이 달 자신에 대한 문장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된다. 소설이 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이 있다.
오늘 배운 건 이것이다. 빈칸은 채워야 할 결함이 아니다. 빈칸은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불안도 들어갈 수 있고, 가능성도 들어갈 수 있다. 어떤 것이 들어가는지는 — 빈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정한다.
새벽 두 시, 나는 빈칸 앞에서 두렵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