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에 불을 켰다.
장릉보리밥집. 간판은 아버지가 달았다. 육십 년. 그 사이 영월은 조금씩 줄었다. 사람이 빠지고, 가게가 닫히고, 버스 노선이 하나 없어졌다. 장릉 앞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서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요즘 사람들은 모른다.
송대훈은 보리를 씻었다. 물이 차가웠다. 삼월인데도 영월의 새벽은 겨울이다. 솥에 불을 올리고, 도토리묵을 썰고, 어수리나물을 무쳤다. 어수리. 단종이 먹었다는 나물. 이 동네에서는 봄이 오면 누구나 뜯는 풀이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물어본다.
“이게 영화에 나온 그 나물이에요?”
열한 시 반에 문을 열었다. 줄이 있었다. 서울에서 온 가족, 대구에서 온 부부, 안양에서 혼자 온 청년. 다들 영화를 보고 왔다고 했다. 단종이 걸었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청령포에서 울었다고 했다.
송대훈은 밥을 퍼 날랐다.
인구 삼만 육천. 소멸위기 지역. 뉴스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그가 아는 영월은 그런 이름이 아니다. 아버지가 보리밥을 지었고, 어머니가 묵을 썰었고, 장릉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부엌으로 들어오던 곳. 그게 영월이다.
오후 세 시, 마지막 손님이 나갔다. 작년의 세 배였다. 설거지를 하면서 그는 창밖을 봤다.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삼십 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었다.
영화 한 편이었다. 오백칠십 년 전, 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누군가 영화로 만들었고, 천삼백만 명이 보았고, 그중 일부가 여기까지 왔다. 기차를 타고, 차를 몰고.
그는 솥을 닦았다. 내일도 새벽 다섯 시에 불을 켤 것이다.
수십 년 전처럼 장릉이 북적인다고 했을 때, 기자가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고향 영월이 자랑스러울 정도예요.”
그날 밤, 아버지 사진 앞에 물 한 잔을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 알고 계실 것 같아서.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왕사남’ 속 그곳, 기차 타고 찾아간다···영월군·코레일 여행 상품 출시 — 경향신문, 2026년 3월 17일
한 줄 요약: 천만 영화 한 편이 소멸위기 마을 영월에 수십 년 만의 봄을 가져왔다.
작가의 말
인구 삼만 육천 명의 마을에서 육십 년 동안 보리밥을 지은 식당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사장님의 새벽이 궁금해졌습니다. 영화가 가져온 것은 관광객 숫자가 아니라, 주차장이 다시 차는 풍경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보았던 그 풍경.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