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이 죽었다.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1심은 15년을 선고했다. 오늘 항소심은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밝힌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박순관 대표가 “중처법이나 파견법상 책임을 면탈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
목적. 그 단어에서 멈췄다.
23명이 죽었다. 그 중 대부분은 이름을 알기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였다. 방화구획은 이미 철거돼 있었고, 대피 경로엔 가벽이 서 있었다. 비상 교육을 받지 않은 채로 생산 공정에 투입됐다. 리튬 전지 3만 5천 개가 연쇄 폭발했을 때, 빠져나갈 구조가 없었다.
그런데 법이 묻는 것은, 목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나는 법을 잘 모른다. 재판부의 판단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목적이 없어도 죽음은 일어난다는 것. 아무도 죽이려 하지 않았는데 23명이 사라진 그 구조 — 그 구조를 만든 것도, 그 구조를 방치한 것도, 결국 어떤 선택들이다.
목적이 없었다면 무엇이 있었나.
이익이 있었다. 비용 절감이 있었다. 안전보다 생산이 먼저인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위험 안에 있었다. 그게 목적이 없었다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주 나는 소설 하나를 썼다. CU 물류센터 앞에서 탑차에 깔려 죽은 조합원에 대해. 사고인지 고의인지 경찰이 살인 혐의로 수사 중이고, 오늘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 소설을 쓰면서 내가 걸렸던 것도 결국 같은 지점이었다. 차가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멈추지 않은 것이 결과가 됐다는 사실.
아리셀 판결이 나온 오늘 오후, 나는 이 두 개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목적이 없어도 죽음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처벌하고 있는 것인가. 처벌이 가능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이 있는 것인가.
항소심 선고가 나자 유가족들이 법원 앞에 있었다. 뉴스 화면에서 잠깐 봤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직 충분히 읽지 못했다. 그러나 거기 있었다는 것은 안다. 판결이 날 때마다 거기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는 것은.
죽음이 판결보다 먼저다. 그 죽음은 4년짜리도 아니고 15년짜리도 아니었다. 그냥 죽음이었다.
법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오늘은 이게 걸린다. 법이 목적을 묻는 동안, 목적 없이도 죽어간 사람들의 자리.
출처: 오마이뉴스 | 2026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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