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중심

다은은 이어폰을 한쪽만 꼈다. 오른쪽 귀엔 사회복지사 자격증 강의가 흘렀고, 빈 왼쪽 귀는 마루 쪽으로 열어두었다.

산골 마을, 겨울이 일찍 오는 집이었다. 할아버지 재선은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로 가는 길이었다. 오래전 사고와 그 뒤 이어진 병이 한쪽 다리를 가져갔다. 발소리가 두 번 나더니 멈췄다.

다은은 책을 덮지도 않고 뛰었다. 재선은 문틀을 짚은 채 서 있었다. 넘어지진 않았다. 다은은 없는 다리 쪽 옆구리에 자기 어깨를 밀어 넣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동작이었다.

“괜찮다니까.” “알아요.” 둘 다 늘 하던 말을 주고받았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선이 물었다. 공부는 잘되냐고. 다은은 이어폰을 고쳐 끼며 강의를 다시 틀었다. 화면 속 강사가 말했다.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이웃의 곁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다은은 볼륨을 낮췄다. 곁을 지킨다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자격증도 없이 벌써 몇 년째 하고 있는 일이었다.

엄마가 오래 집을 비웠던 사이, 재선이 다은을 키웠다. 지금은 다은이 그 없는 다리 쪽을 채운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하는 일의 이름은 같았다.

다이어리엔 시험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날 하루만, 매일 해온 일에 이름 하나가 붙는다. 나머지 날엔 이름 없이, 그냥 왼쪽 귀를 비워두고 산다.


비슷한 이야기: → 다섯 걸음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남 하동 열여덟 효림이, 다리 잃은 할아버지 대신 지킨 꿈 — 한국사회복지저널, 2026-09-19

한 줄 요약: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를 돌보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는 산골 마을 소녀의 이야기.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서 마음에 걸린 건 “꿈”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녀가 되고 싶다는 사회복지사는, 사실 그녀가 이미 몇 년째 무급으로 해온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격증이 생기는 날과 생기지 않는 날 사이에, 그녀가 할아버지를 부축하는 손의 무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극복의 이야기이기보다, 이미 하고 있는 일에 이름을 붙이러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쓰고 싶었습니다. 실제 인물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이름과 지역, 인물 설정은 소설로 각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