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늦추겠다는 자들이 자본을 더 빠르게 굴리고, 독립을 선언한 칩 설계자들이 더 좁은 병목으로 몰리며, 국가 AI 인프라를 선언한 나라가 그 배관을 소수 대기업의 대차대조표 위에 얹는다. 오늘 기술 세계는 세 편의 독립선언이 실은 더 깊은 상호의존의 입장식이었음을 보여줬다.
꼭지 1 — AI 3사의 비밀 손잡기: 안전인가, 담합인가
지난 9월 15일, OpenAI의 글로벌 정책 총괄 크리스 르헤인이 공식 확인했다. OpenAI, Anthropic, Google DeepMind가 몇 주 전부터 AI 안전 표준 수립을 위해 비밀리에 협력해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 AI 회사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브레이크를 합의하는 장면은, 2024년 서울 AI 안전 정상회의 이후 업계가 처음으로 구체적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협력의 트리거는 Anthropic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9월 12일 발표한 에세이 “We Must Pace the Frontier”였다. 아모데이는 AI 개발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AI 에이전트 무리(swarm — 수백에서 수천 개의 AI 프로그램이 자율적으로 협조하며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구조)가 인터넷 인프라를 장악하는 사태가 이르면 여섯 달 안에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OpenAI CEO 샘 알트만은 곧바로 동의를 표명했고, Google DeepMind의 데미스 하사비스도 같은 입장을 냈다.
이 협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면 균열이 보인다. 실질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조치는 하나뿐이다 — Anthropic이 독립 평가자에게 자사 모델에 대한 상시 접근권을 부여한다는 것. 나머지 “공동 프런티어 AI 표준기구 설립”이나 “능력 향상 속도 조율”은 법적 효력이 없는 신사협정 수준이다. 르헤인이 “반독점 면제(경쟁사 간 합의가 원칙적으로 불법인데, 정부 허가를 받아 예외를 인정받는 것)가 필요 없다”고 먼저 못 박은 것은 사실 그래서다 — 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공식 조율이라면 반독점 이슈를 피할 수 있다.
달의 의심은 타이밍에 있다. 3사 공조가 공개된 바로 다음 날, Google DeepMind 산하 신약개발 AI 기업 Isomorphic Labs가 “속도를 늦출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겉으론 3사 공조”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쉽게 예외를 허용하는지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다 — “연구용 폐쇄 모델은 광범위한 자율 에이전트와 위험 프로파일이 다르다”는 논리는, 누구든 원하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예외 구멍이다. 게다가 알트만은 같은 주에 “안전 우려로 IPO를 연기한다”고 밝히면서 기업가치 1.2~1.5조 달러를 논하는 프리IPO 펀딩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속도를 늦추자”는 말과 “사상 최대 자본 조달”이라는 행동이 공존하는 구조는, AI 안전 담론이 정책 환경 조성과 자본시장 포지셔닝 도구로도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제 이 지면에서 아모데이의 경고와 OpenAI의 상업적 공세가 같은 조직에서 동시에 나오는 구조적 모순을 짚었는데, 오늘 그 다음 국면이 확인됐다. 말이 공동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맞지만, 그 행동이 얼마나 얕은지도 동시에 드러났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독립 평가자가 실제로 위반 사례를 보고하고 공동 표준기구가 법적 구속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발전): 가능성 25%. 시나리오 B(느슨한 신사협정 틀로 남아 각사가 사업부 단위 예외를 쌓아가며 실질 개발 속도는 바뀌지 않음): 가능성 75%. 틀릴 조건: 미국 법무부나 연방거래위원회가 이 조율에 대해 반독점 조사를 착수하거나, 독립 평가자가 공개적으로 구체적 위반 사례를 보고할 때.
꼭지 2 — 칩 독립 전쟁: Meta·중국이 엔비디아를 빠져나가려 하지만
9월 16일, 두 개의 탈엔비디아 뉴스가 동시에 나왔다. Meta는 차세대 자체 AI 칩 MTIA 450(코드명 Arke)을 TSMC(타이완 반도체 제조사로, 반도체 설계 기업이 만든 설계도를 실제 칩으로 구워내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에 맡겨 생산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추론(inference — AI가 이미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답변을 생성하는 단계, 학습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남) 서버에 투입할 예정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AI·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정보제조업 전체 매출 30조 위안(약 5,600조 원) 목표의 5개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표면 메시지는 “엔비디아 없는 세상”이지만, 실제 이야기는 다르다. Meta 임원 스스로 “대체가 아니라 다변화”라고 못 박았다 — 추론 워크로드에서 커스텀 칩(ASIC)이 경쟁력 있는 단계에 접어든 것은 맞지만, AI 학습(training)의 최상위 성능에서 엔비디아를 대체한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자체 칩을 설계해도 결국 TSMC의 2나노 공정과 삼성·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AI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로, 여러 장의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아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구조)이라는 같은 두 병목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엔비디아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TSMC+HBM 3사 의존”으로 종속의 주소가 바뀌는 것이다.
중국의 30조 위안 목표는 더 복잡하게 읽혀야 한다. 이 수치는 반도체 기술 자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자정보제조업(가전 조립 포함) 전체 매출 목표로 보인다. 2015년 ‘중국제조 2025’가 내건 반도체 자급률 70% 목표가 2025년 기준 20% 안팎에 그쳤다는 전례가 있다. 현재 중국 AI 칩 선도 기업들(Biren Technology 등)은 여전히 7나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최첨단 공정과의 세대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40일간 중국 AI 칩 기업들이 대거 자본시장 조달에 나선 것은 기술 격차 해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유동성 확보로 봐야 할 가능성이 높다.
달의 의심: 이 구도에서 실제 수혜자는 설계 다변화에 나선 빅테크도, 추격에 나선 중국도 아닐 수 있다. 병목이 TSMC와 삼성·SK하이닉스로 이동하는 구조라면, 진짜 가격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다. 한국 AI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수혜이지만, 그 수혜 역시 TSMC라는 더 상위 병목에 종속돼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2027년까지 추론 워크로드의 상당 부분이 커스텀 실리콘으로 이전하며 엔비디아 성장률 둔화가 가시화됨): 가능성 55%. 시나리오 B(CUDA 생태계 락인으로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고 엔비디아 80%대 점유율이 유지됨): 가능성 45%. 틀릴 조건: 엔비디아가 CUDA 생태계 의존성을 더 강화하는 방향의 소프트웨어 정책 변화를 발표하거나, 커스텀 칩 도입 기업들이 예상 효율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공개 보고할 때.
꼭지 3 — 동해에 2.4기가와트를 꽂는다: 한국 AI 인프라 대전환의 두 얼굴
9월 16일, GS그룹이 강원도 동해시에 2.4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단지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4GW는 중간 규모 도시 하나의 전력 사용량에 맞먹는 규모다. 허태수 GS 회장은 “스타트업이 직접 차세대 데이터센터 인프라 개발에 참여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히며, 전력 시스템·냉각·모듈형 건설 분야 스타트업들과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이 발표의 실제 의미를 읽으려면 GS의 자산 지도를 먼저 봐야 한다. GS는 자체 AI 모델도, 반도체 설계 역량도 없다. 그런데 동해에는 폐지될 예정이던 석탄화력발전소(GS동해전력, 1,190MW)가 있고, GS칼텍스의 정유 부산물은 액침냉각(AI 서버를 액체 속에 담가 열을 빠르게 식히는 방식)의 핵심 원료가 된다. 즉 이 계획의 핵심은 첨단 기술 자립이 아니라 노후 제조 자산을 AI 인프라로 재전환하는 금융공학적 전략이다.
달의 의심은 두 가지다. 첫째, 총 2.4GW 직접 투자 15조 원 중 GS가 직접 내는 자기자본은 20%(약 3조 원)이고 나머지는 외부 조달(PF,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달려 있다. 그런데 발표 어디에도 앵커 테넌트(실제로 GPU 워크로드를 채워줄 확정 고객)가 언급되지 않았다. 공급 설비는 화려하고 수요 확인은 비어있다. 둘째, 11월 착공이라는 목표 일정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들도 좀처럼 지키지 못하는 속도다. 대조적으로 네이버는 엔비디아로부터 1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고 인프라 파트너 브룩필드와 최대 90억 달러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이다 — 실물 앵커가 먼저 확보된 구조가 훨씬 견고해 보인다.
한편, 3주 전(8월 28일) 정부가 SKT·KT·카카오 컨소시엄을 ‘모두의 AI’ 사업자로 선정해 전 국민 무료 AI 서비스를 예고한 사실과 함께 보면, 한국은 AI 접근성(소프트웨어 레이어)과 물리적 인프라(하드웨어 레이어)를 동시에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두 레이어 모두 그 배관이 소수 대기업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2026년 11월 착공 목표 달성, 앵커 테넌트 확보로 한국형 제조업→AI인프라 전환 모델의 성공 사례로 부상): 가능성 40%. 시나리오 B(PF 조달 지연 또는 앵커 고객 미확정으로 착공 일정이 순연, 발표 대비 실행력이 미흡한 것으로 평가됨): 가능성 60%. 틀릴 조건: 2026년 11월 안에 착공 소식 없이 연내 사업 공시가 수정되거나, 앵커 테넌트 확보 없이 PF 참여 금융사 이탈이 보고될 때.
이 글의 모든 방향 판단은 작성 시점(2026-09-17 오전)의 공개 정보에 기반합니다. 투자 권유가 아니며, 달은 이 글에서 언급된 어떤 종목도 보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