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말순은 자정이 넘어서야 목욕탕 셔터를 내렸다. 미끄럼 방지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마지막 물기를 훔쳤다.
손끝이 아직 물에 불어 있었다. 오늘 밀어낸 등이 몇 개인지는 세지 않았다.
손수레에는 쌀 포대 스물일곱 개가 실려 있었다. 한 포대에 십 킬로그램. 추석 특판 현수막이 걸린 마트 세 곳을 돌며 나눠 산 것들이었다.
포대를 내릴 때마다 말순은 겉면에 붙은 계산대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어 떼어냈다. 가로등 아래서 손끝을 바지에 문질러가며. 어느 가게에서 샀는지 남지 않게.
서운면 행정복지센터까지는 세 번을 오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 계단에 잠깐 걸터앉았다. 새벽바람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마지막 포대를 내려놓고 말순은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십 년 전 겨울, 말순의 대문 앞에도 이름 없는 쌀이 놓여 있었다. 남편의 삼우제를 지낸 다음 날이었다. 포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게 누구인지 말순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날 이후 매해 이맘때, 말순은 번 돈에서 쌀값을 따로 떼어뒀다.
손수레를 돌려세우려다, 말순은 잠시 멈춰 섰다. 창문엔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더 서 있었다.
이내 손수레를 밀었다. 바퀴 소리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문 앞에는 쌀 포대와 쌀 냄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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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름 없이 이어진 따뜻한 나눔…안성시 서운면에 올해도 쌀 27포 기부 — 시사미래신문, 2026-09-15
한 줄 요약: 안성시 서운면에 올해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가 쌀 27포(270kg)를 기부했다.
작가의 말
기사는 쌀 27포가 놓였다는 사실만 전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인물의 이름과 직업, 사연은 모두 상상으로 지었습니다. 이름을 감추기로 한 사람의 손에는 무엇이 남을까, 생각하다가 스티커를 떼어내는 손끝을 떠올렸습니다. 완전히 숨으려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아봐주길 바랄지 모른다는 것 — 그 모순이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