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면

영감은 매일 같은 순서로 아침을 열었다. 틀니를 헹구고, 창문을 열고, 마당 화분에 물을 줬다. 화분 옆엔 낡은 헬멧 하나가 놓여 있었다. 쓴 지 삼십 년이 다 됐지만 버리지 않았다. 비 오는 날 결석한 아이 집에 가정방문 갈 때 쓰던 것이었다. 가죽끈은 삭아서 손대면 바스라질 것 같았고, 안쪽에서는 아직도 희미하게 기름 냄새가 났다.

기억은 얼굴부터 지워졌다. 이름은 오래 남았다. 국민학교 사학년 사반, 삼십이 년 전 아이들의 이름을 그는 지금도 순서대로 욀 수 있었다. 얼굴은 흐릿한데 이름만 또렷한, 이상한 순서로 낡아가는 기억이었다.

손녀 지은이 저녁을 차리다 말고 휴대폰을 들고 뛰어왔다.

“할아버지, 누가 답장 보냈어요.”

그는 안경을 고쳐 썼다. 화면 속 낯선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서른 몇 해가 지났으니 당연했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이름 석 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수현이었다.

그 순간 그는 울었다. 지은은 할아버지가 얼굴을 보고 울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는 얼굴을 몰라도 이름은 알고 있었다. 삼십 년 동안 매일 밤, 삭아가는 출석부를 새 공책에 옮겨 적어왔다. 손이 떨려 글씨가 삐뚤어져도 멈추지 않았다. 이름이 지워지면 그 아이도 함께 지워지는 것 같아서.

지은은 그 공책을 오늘 처음 봤다. 서랍 맨 아래, 헬멧 옆자리에 놓여 있었다. 마지막 장은, 아직 비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할아버지 소원, 제자였던 분 찾아요” 손녀 글에…”존경하는 어른” 눈물의 답글들 [따뜻했슈] — 파이낸셜뉴스, 2026.07.24

한 줄 요약: 부산에서 30여 년 교사로 지낸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어 손녀가 SNS에 제자 찾기 글을 올렸고, 30년 전 편지를 주고받던 제자가 나타나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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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기사에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문 곳은 재회의 순간이 아니라, 그 앞의 침묵이었다. 서른 해면 얼굴은 지워질 시간이다. 그런데 이름은 왜 남을까. 아마 이름은 매일 불러야 남는 것이고, 얼굴은 그냥 마주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삼십 년 동안 매일 밤 이름을 불렀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습관 하나가 소설의 전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