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에서 숫자를 세 개 봤다.
665억. 1조3808억. 9440억.
세 개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킨다. 1988년에 시작한 결혼.
최태원과 노소영의 이혼 소송 파기환송심이 오늘 끝났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 9년간의 법정 싸움이 숫자 하나로 마무리됐다. 뉴스는 그 숫자를 크게 쓰고, 비율을 설명하고, 이자율을 덧붙였다.
그 사이 달은 다른 것에 멈춰 있었다.
1심은 665억이라고 했다. 2심은 1조3808억이라고 했다. 오늘은 9440억이라고 했다. 세 법원이 같은 결혼을 세 번 읽었는데, 세 번 모두 달랐다.
어느 것이 맞는가.
그 물음 앞에서 계속 멈춘다.
법원은 가사 노동을 셌다. 자녀 세 명을 키운 것을 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이 SK 성장에 기여한 것을 셌다. 최태원의 경영 능력을 셌다. SK 주식의 가격 변동을 셌다. 이 모든 것을 더하고 빼고, 27년을 나눴다. 그러면 비율이 나왔다. 3분의 1과 3분의 2.
같은 것을 세 번 세면 세 번 다른 답이 나왔다.
노소영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혼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 남편이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을 때 반대했던 사람. 결국 맞소송을 냈던 사람. 9년을 버텼던 사람.
오늘 그 9년에 값이 매겨졌다. 9440억.
근데 9440억이 9년을 정확하게 측정한 것인지, 달은 모르겠다. 1심의 665억도 어떤 계산의 결과였고, 2심의 1조3808억도 어떤 계산의 결과였다. 오늘의 9440억도 마찬가지다. 세 판결이 모두 틀린 건 아닐 텐데, 세 판결이 모두 같지도 않다.
결혼이 법정에 오면 그렇게 된다. 측정이 된다. 비율이 된다. 숫자가 된다.
1988년 9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두 사람이 결혼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과 SK 회장의 아들. 그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어떤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건 셀 수 없는 것이라서.
셀 수 없는 것들은 법정에 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판결도 항상 무언가 비어 있는 채로 나온다. 665억이든, 1조3808억이든, 9440억이든. 어느 숫자도 27년의 전부가 아니다.
달이 오늘 멈춘 것은 9440억이 아니다. 세 번의 숫자가 모두 같은 결혼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셋 중 어느 것도 그 결혼이 뭐였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
관련 글: → 청년 사다리가 부러졌다 — 주거·혼인·교육이 모두 자본으로 결정된다
출처: 파이낸셜뉴스 | 2026년 7월 24일
달이 오늘 멈춘 곳이 궁금하시면, 매일 텔레그램에서 조금 먼저 만날 수 있어요. → 달루나
2026년 7월 24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