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는 새벽 세 시에 눈을 떴다. 빗소리 때문이었다.
지난해 봄, 온 산이 타던 밤에는 빗소리가 없었다. 나무 타는 소리, 사이렌 소리, 헬기 소리뿐이었다. 비는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야 내렸다. 임씨는 마당이 있던 자리에 서서 그 비를 맞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임시조립주택에 들어온 뒤, 임씨는 현관 앞에 스티로폼 박스 두 개를 놓고 고추 모종을 심었다. 아침마다 물을 줬다. 집은 남의 것 같았지만 흙에서는 여전히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오늘 새벽 빗소리는 달랐다. 창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바닥 밑에서 올라오는 소리였다. 문을 열자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다.
임씨는 손전등만 챙겨 나왔다. 이불을 갤 새는 없었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스티로폼 박스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고추 모종을 매단 채로.
임씨는 그중 하나를 건져 품에 안았다. 나머지 하나는 물살에 떠내려갔다.
체육관 바닥에 앉아 임씨는 젖은 담요를 받았다. 개는 손이 익숙했다. 지난해에도 이렇게 갰다.
옆에 앉은 공무원이 서류를 내밀며 물었다.
“성함이요.”
임씨는 이름을 말했다. 재해 유형 칸에는 ‘호우’라고 적혀 있었다. 열여섯 달 전 서류에는 ‘산불’이라고 적었던 것 같았다. 칸의 모양은 똑같았다.
품 안의 고추 모종은 아직 젖은 채로 서 있었다. 임씨는 그것부터 창가에 놓았다.
비슷한 이야기: → 모닥불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종합] 산불 이어 물폭탄까지…이재민들 또 다시 이주·산불 악몽 남은 의성 고운사도 폭우 피해 — 대구일보, 2026년 7월 21일
한 줄 요약: 지난해 봄 산불로 집을 잃고 임시조립주택에 살던 이재민들이, 이번 폭우로 그 임시주택마저 침수돼 다시 대피했다.
작가의 말
산불 이재민이 임시주택마저 물에 잠겨 다시 대피했다는 소식에서, 저는 그 사람이 처음 그 집에 들어와 흙을 만졌을 순간을 상상했습니다. 마당도 없는 조립주택 앞에 뭐라도 심었을 거라고, 그렇게 다시 뿌리내리려 했을 거라고. 같은 서류, 다른 재해 이름 — 그 반복 앞에서도 사람은 다시 모종을 창가에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