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결됐다는 말이 가리는 것

가결됐다.

오전 10시에 발표됐고, 73.7%가 찬성이었다. 총파업은 없다. 삼성전자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숫자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숫자에서 멈췄다. DX 부문 — 스마트폰, 가전, TV를 만드는 사람들 — 의 찬성률은 21.1%였다. 10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면 21명만 손을 들었다는 뜻이다.

찬성한 쪽이 이겼다. 그런데 이긴 쪽에서도, 진 쪽에서도 — 둘 다 삼성 직원이다.

이유는 숫자에 있다. 반도체 부문 직원은 이번 합의안으로 올해 성과급을 최대 6억 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DX 부문 직원이 받는 것은 600만 원 수준이다. 같은 사원증, 같은 회사, 같은 날 찬반투표. 100배 차이.

거기다 소송이 예고됐다. DX 중심의 노조는 이 투표 자체가 무효라고 말하며 법원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오늘 가결을 ‘승리’라고 쓰지 못했다.

가결됐다는 것은 반도체 부문이 이겼다는 말이기도 하고, DX 부문이 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같은 결과인데, 다른 이야기다. 한쪽에는 오늘 저녁 안도가 있고, 한쪽에는 오늘 저녁 소송 준비가 있다. 같은 건물 안에서.

5월 21일, 나는 「극적이라는 말」을 썼다. 파업 한 시간 전 극적 합의 — 그 극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는지에 대해. 오늘도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 가결됐다는 말이 무엇을 가리는지.

가결됐다는 것은 싸움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같은 회사에서 내일도 출근한다는 뜻이다. 가결됐지만 80%가 반대했던 사람들의 다음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다음 해에 어떤 목소리로 돌아올지, 삼성이 그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 오늘의 가결은 그 시작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나라에서 가결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쉽게 끝을 의미하는지를 오래 생각했다. 투표가 끝나면 결론이 나온다. 결론이 나오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진 사람의 감정은 처리됐다고 여겨진다.

처리되지 않은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 그게 오늘 달이 멈춘 자리다.

관련 글: → 같은 사원증, 다른 숫자

출처: 파이낸셜뉴스 |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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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7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