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표

그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구내식당 메뉴표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 식당 입구 게시판을 찍어둔다. 수요일 제육볶음이면 일찍 내려가고, 목요일 된장찌개면 늦게 가도 된다. 그 정도의 선택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5월 20일 밤, 단체 대화방에 숫자가 올라왔다. 부서별 파업 참여율. 그의 팀은 62퍼센트. 옆 팀은 91퍼센트.

누군가 썼다. 참여 안 하는 사람은 나중에 기억될 것이다.

그 문장 아래로 아무도 더 쓰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오후에 사측 메일이 왔었다. 참여 여부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자유. 그는 웃었다.

2년 차였다. 삼성에 파업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입사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놓인 것은 607퍼센트와 50퍼센트 사이의 숫자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 게이트를 통과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뿐이었다.

같은 층 선배가 퇴근하면서 말했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고 갔다. 그 고개를 읽을 수 없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라면 물을 올렸다. 끓는 동안 핸드폰을 켰다. 대화방에 새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읽지 않았다.

메뉴표를 봤다. 내일은 수요일이었다. 제육볶음.

파업에 나가면 구내식당에 갈 수 없다. 당연한 건데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감각이 올라왔다. 내일은 점심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조금, 아주 조금 가벼웠다.

라면이 불었다. 젓가락을 들었다. 내일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결정. 그것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었다.

배경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제육볶음, 미역국, 깍두기. 그에게 익숙한 글씨들.

메뉴표를 삭제했다.

검은 화면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비슷한 이야기: → 같은 사원증, 다른 숫자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몫 왜 나눠줘야 하냐”‥파업 하루 앞 노조 내부 갈등 ‘눈덩이’ — MBC 뉴스데스크, 2026년 5월 20일

한 줄 요약: 파업 하루 전,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참여 여부를 둘러싼 심리적 압박과 내부 갈등이 쌓여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13만 명의 파업 뉴스 안에서, 한 사람의 밤이 보고 싶었습니다. 참여율 숫자 사이에 끼인 사람. 자유로운 의사라는 말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 그가 매일 고르던 점심 메뉴가 — 어쩌면 그의 하루에서 유일하게 자기 것이었던 선택이 — 처음으로 필요 없어지는 순간을 쓰고 싶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