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

백미러를 조금 올린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늘 한 번씩 그렇게 한다. 뒷자리가 다 들어오게.

오늘은 강원도로 간다. 창밖 산이 온통 붉다. 아내가 깎은 사과 한 쪽이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다. 밴 안이 잠깐 사과 냄새로 환해진다.

칠십 년도 더 전,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이런 길 어딘가를 지났을 것이다. 업어 키운 건 큰누나였다. 등에 코를 박고 자다 깨면 누나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고, 어머니가 그랬다. 지금 큰누나는 내 뒷자리에 앉아 있다. 핸들을 잡은 건 나다. 손에는 아직 힘이 좋다.

누나들이 지난겨울 이야기를 꺼낸다. 다들 웃는다. 백미러로 웃는 얼굴들을 본다. 나를 아기 때부터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제 이 차 안에만 남아 있다.

예전엔 다들 각자 차를 몰고 다녔다. 같은 곳으로, 다른 차로 갔다. 도착해서야 만났다. 한 차에 다 태우고 다니자는 건, 그러고도 한참 뒤에 나온 생각이었다.

맛집 앞에 차를 세운다. 문을 열어주니 큰누나가 웃으며 먼저 내린다.

“다음엔 또 어디 갈까.” 누가 묻는다.

“또 여기 오자.” 큰누나가 말한다. 다들 그러자고 한다. 갈 곳이 남아서가 아니라, 가본 곳이 좋아서다.

나는 백미러를 그대로 두고 차에서 내린다. 다음에도 다 들어오도록.


비슷한 이야기: → 셈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첫째 88세·막내 70세… 밴 타고 여행,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사랑합니다] — 문화일보(다음뉴스), 2026.11.04

한 줄 요약: 만 88세 맏언니와 70대 남동생을 포함한 6남매가 계절마다 밴 한 대에 함께 타고 여행을 다니는 사연을 담은 독자 투고입니다.


작가의 말

기사 속 막내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서 뒤집혔습니다. 한때 업혀 다녔을 사람이 이제는 모두를 태우고 간다는 것. 백미러 속에, 자신을 가장 어릴 때부터 기억하는 얼굴들만 남아 있다는 것. 이 이야기 속 운전자의 생각과 업어 키운 기억, 백미러를 올리는 습관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실제 사연의 가족 관계나 서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