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은 훈련장에서도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는다.
유격 코스를 돌 때마다 헤어네트 밖으로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교관이 두 번 지적했다. 이진경은 그물망을 한 번 더 눌러 감쌌을 뿐,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2012년, 학군단에 입교하던 날 머리를 짧게 잘랐다. 거울 속에서 낯선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바닥에 쌓였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이진경은 그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버려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가야 했다고.
그 뒤로 14년,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았다. 2년에 한 번 미용실 의자에 앉아 가위 소리를 들었다. 사각, 사각. 40센티미터씩 여섯 번, 이번이 일곱 번째였다. 누적 280센티미터. 그 숫자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이진경에게는 그냥 14년이었다.
동기가 물은 적 있다. 안 아까워?
이진경은 웃기만 했다. 아까운 건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그걸 쓸 아이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이었다. 봉투에 담아 단체에 보내면 그걸로 끝이었다. 어떤 가발이 됐는지, 누가 썼는지, 그 아이가 거울 앞에서 웃었는지 이진경은 알 수 없었다.
미용실을 나서며 목덜미가 허전했다. 손으로 짧아진 머리를 쓸어봤다. 낯설었다. 2012년 그날처럼.
돌아가는 길, 이진경은 머리끈을 하나 샀다. 묶을 머리가 없는데도.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육군 장교가 14년간 머리 기른 이유…소아암 환아에 280㎝ 기부 — 서울신문, 2026-09-20
한 줄 요약: 육군 대위가 2012년부터 14년째 파마·염색 없이 머리를 길러 소아암 환아용 가발 제작을 위해 일곱 번째 모발 기부(누적 280㎝)를 했다는 소식.
비슷한 이야기: → 삼십 분
작가의 말
군인이라는 정체성엔 흔히 짧은 머리가 따라붙는다. 이 이야기 속 사람은 정반대의 선택으로 14년을 살아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정말 마음에 걸린 건 “안 아까워?”라는 질문이었다 — 아마 진짜 아까운 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그 마음이 가닿을 얼굴을 끝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지는 선의를, 그 선의가 끝내 얼굴 없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상상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