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선 등

병철은 시동을 걸기 전, 계기판을 손등으로 한 번 쓸었다. 먼지를 닦는 게 아니라 버릇이었다. 그 위엔 빛바랜 증명사진 한 장이 누런 테이프 자국과 함께 붙어 있었다. 아내였다. 스물아홉에 찍은 사진이고, 마흔아홉에 세상을 떴다.

포터는 그해 가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오기 직전에 들어왔다. 큰애는 유치원, 작은애는 배냇저고리를 겨우 벗은 때였다. 새벽마다 짐칸 가득 채소 상자를 실었다. 흙과 배춧잎 냄새가 짐칸에서 가시지 않았다. 29년, 44만 8천 킬로미터. 애 둘을 다 키운 거리였다.

지난달, 정비공이 부품이 끊겼다고 했다. “아직 몇 년은 더 뛸 텐데요.” 아쉬워하는 말에 병철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이별 앞에서 늘 등을 돌리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관이 내려갈 때도, 군대 가는 아들의 뒷모습 앞에서도, 먼저 눈을 피한 건 그였다. 인사를 못 해서가 아니라, 하고 나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달력 뒷면을 뜯어 꾹꾹 눌러 썼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함께 IMF를 견뎠고, 네 덕에 애들을 키웠다고. 와이퍼에 편지를 끼우면서, 계기판 위 사진도 조심스레 떼어 함께 끼웠다.

견인차가 시동을 걸었다. 병철은 손을 들어 흔들려다, 결국 또 몸을 돌렸다. 마지막 1분, 이번에도 지고 말았다.

멀어지는 바퀴 소리를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그 편지, 트럭에게 쓴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비슷한 이야기: → 두 번째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29년 동고동락”… 79세 포터 차주 “가장 힘들 때 차 덕분에 버텨” — 연합뉴스TV, 2026-09-08

29년 44만km 동행..”사랑하는 친구” 트럭에 남긴 편지 — 이데일리, 2026-09-05

한 줄 요약: 부품이 끊겨 폐차하게 된 29년 된 포터 트럭에, 79세 차주가 “사랑하는 친구”라 부르며 고별 편지를 남긴 사연.


작가의 말

편지에 담긴 한 문장이 오래 걸렸다. “마지막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잘 가라 소리 못하고 몸을 돌려버린 것이 마음 아프다.” 트럭에게는 곡진하게 편지를 쓴 사람이, 정작 마지막 순간엔 또 등을 돌렸다는 것. 그 어긋남 안에 이별을 잘 못 하는 한 사람의 평생이 있을 것 같았다. 트럭은 어쩌면 그가 사람에게 못 한 인사를 대신 받아준 존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