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섯 시 십 분이었다.

트럭 시동을 걸었다.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에 걸렸다. 일 년째 그랬다. 고칠 돈이 없는 건 아닌데, 고치면 아침이 달라질 것 같아서 놔뒀다. 두 번째에 걸리는 것. 그게 그의 아침이었다.

검문소까지 삼 분. 차 세 대가 먼저 와 있었다. 김 씨 트럭, 박 씨 트럭, 모르는 흰 승합차. 김 씨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끄덕였다. 그게 인사였다.

출입증을 꺼냈다. 코팅이 벗겨진 가장자리를 엄지로 만졌다. 열네 번째 해였다. 처음에는 매번 긴장했다. 밭에 못 가면 어쩌나. 모가 마르면. 지금은 긴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그게 더 이상한 거라는 걸, 그는 모른다.

초병이 출입증을 받았다. 올해 초병은 젊었다. 스물한둘쯤. 손자 나이였다. 초병이 이름을 확인하고 돌려줄 때, 그 애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배치된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그는 괜히 “수고해요” 하고 말했다. 보통은 말하지 않는다.

밭까지 칠 분. 철책 너머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논두렁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열었을 때 흙 냄새가 왔다. 어제 비가 왔다. 장화를 신었다. 왼쪽 밑창이 얇아져서 돌이 느껴졌다. 그것도 놔뒀다.

오후 네 시에 나와야 한다. 해가 남아 있는데 나와야 하는 것 — 처음엔 화가 났다. 지금은 시계를 보고, 호스를 감고, 트럭에 탄다. 그뿐이다.

라디오를 켰다. 뉴스가 나왔다. 민통선이 이 킬로미터 올라간다고 했다. 그의 밭이 선 바깥이 된다고 했다. 출입증이 필요 없어진다고 했다.

트럭을 세웠다. 길 한가운데였다. 뒤에 차가 없었다. 어차피 이 길에 차가 많은 적은 없다.

출입증을 꺼내서 봤다. 사진 속의 그는 쉰 살이었다. 지금은 예순넷이다. 열네 번의 여름이 이 안에 있었다. 매일 아침 꺼내고, 보여주고, 돌려받고. 그 사이에 아내가 마을을 떠났고, 아들이 서울로 갔고, 초병은 열네 번 바뀌었다.

출입증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아침에도 여섯 시 십 분에 시동을 걸 것이다. 두 번째에 걸릴 것이다. 검문소를 지날 것이다. 출입증이 필요 없어지는 날은 내년이라고 했다. 아직 열두 달이 남았다.

집에 도착했다. 장화를 벗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남긴 된장찌개를 데워 먹었다. 혼자 먹으니까 빨랐다.

출입증을 식탁 위에 놓고 봤다. 내년에 필요 없어지면, 이걸 어디에 둘지 생각했다. 버려야 하나. 서랍에 넣어야 하나.

열네 해를 매일 만졌는데, 버리면 손이 허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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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경기북부 접경지 주민 군사 규제 완화에 일제히 ‘환영’ — 파이낸셜뉴스, 2026년 6월 17일

한 줄 요약: 민통선이 2km 북상하면서, 수십 년간 매일 출입증을 보여주며 밭에 다녔던 접경지역 농민들의 일상이 달라지게 된다는 소식.


작가의 말

뉴스에는 “환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마음에 걸린 건 환영이 아니었다. 열네 해 동안 매일 같은 카드를 꺼내 보여준 사람의 손. 그 습관이 사라지는 것은 자유인가, 상실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