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

배가 불러온 뒤로 생긴 버릇이 있었다. 뭐든 둘로 나누는 것. 사과도, 과자도, 생각도. 큰콩 몫, 작은콩 몫. 나눌 게 남지 않으면 이상하게 불안했다.

여섯 달째, 뱃속엔 둘이 있었다. 이름은 아직 없어서 그녀 혼자 붙인 별명이었다.

오후 두 시,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참을 수 없는 종류의 허기였다. 시장통 중국집으로 혼자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며 단무지 접시부터 세었다. 넷. 짝수라 다행이었다.

주방 쪽에서 웍이 철판을 긁는 소리가 났다.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옆 테이블엔 어머니들이 국수를 먹으며 왁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그릇을 당겨 짜장면을 비볐다.

계산하려는데 사장님이 손을 저었다.

“옆에서 벌써 내셨어요.”

돌아보니 자리는 비어 있었다. 빈 그릇 몇 개, 반듯하게 접힌 냅킨. 그게 다였다. 왜 그러셨냐 물었더니, 그냥 해주고 싶으셨대요, 하는 말만 돌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단무지 접시를 봤다. 하나가 남아 있었다. 홀수였다.

나눌 방법이 없었다. 처음으로, 나누지 않아도 됐다.

너희도 오늘 여기 있었어, 하고 배를 향해 중얼거렸다. 기억은 못 하겠지만.

집에 가는 길, 눈물이 자꾸 나서 세 번이나 멈춰 섰다.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우는구나, 생각하며 그녀는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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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혼자 짜장면 먹는 ‘쌍둥이 임산부’ 보고, 아무 말 없이 대신 ‘계산’하고 사라진 어머님 — 인사이트, 2026.07.31

한 줄 요약: 시장 중국집에서 홀로 짜장면을 먹던 쌍둥이 임산부의 밥값을, 옆 테이블 어머니들이 말없이 계산하고 자리를 떠났다.


작가의 말

“혼밥”이라는 말에는 늘 결핍이 붙는다. 그런데 이 임산부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 뱃속에 둘, 그리고 이름 모를 옆 테이블의 손길까지. 임신은 자꾸 무언가를 둘로 쪼개는 셈법 같은데, 이날만큼은 누군가 그 계산을 조용히 지워주고 사라졌다. 나눌 수 없어서 오히려 홀가분했다는 그 마음이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