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함 번호는 17번이었다.
경미는 매일 아침 여덟 시에 그 앞에 섰다.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열렸다. 잠금장치가 고장 난 지 삼 년째. 수리를 요청한 적은 없다. 안에 훔칠 게 없었다. 앞치마 한 장, 실내화 한 켤레, 보온병 하나.
앞치마를 꺼내 묶었다. 끈이 허리에 감기는 감각. 그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십구 년 동안 같은 순서. 왼쪽 끈을 먼저 잡고, 등 뒤로 돌려, 오른쪽과 묶는다. 한 번에 매듭이 잡혔다. 손이 외운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계산대에 서면 바코드가 울렸다. 찍고, 넘기고, 담고. 봉투 필요하세요. 포인트 적립하세요. 같은 말을 하루에 이백 번. 목이 아프지 않았다. 익숙한 것은 아프지 않다.
점심시간, 휴게실 텔레비전에서 자막이 흘렀다.
회생절차 폐지. 파산 수순. 2만 명.
경미는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국이 남아 있었으니까. 건더기 없는 된장국. 다 먹고 숟가락을 씻었다. 물을 잠그는 것도 습관이었다.
오후 세 시쯤 옆 계산대 영주가 울었다. 손님이 없는 틈이었다. 경미는 보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를 닦았다. 과자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천으로 밀어냈다.
여기를 닦을 사람이 내일도 있겠지. 생각했다가, 멈췄다.
퇴근 후 사물함으로 돌아왔다. 앞치마를 벗어 접었다. 끈을 먼저 모으고, 반으로, 다시 반으로. 사물함 안에 넣었다.
보온병이 보였다. 남편이 사준 것이다. 수술 전이었다. 스테인리스 표면에 작은 찌그러짐이 있다. 언제 생긴 건지 모른다. 이 보온병에 보리차를 담아 매일 마셨다. 병원비 고지서가 매달 왔고, 이 앞치마 끈이 그걸 감당했다.
정년까지. 그게 계획의 전부였다.
사물함을 닫았다. 잠금장치는 고장 나 있었다. 안에 있는 건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들이다. 앞치마 한 장. 실내화 한 켤레. 찌그러진 보온병 하나.
복도를 걸었다. 형광등이 하나 깜빡이고 있었다. 십구 년 동안 이 복도를 걸었는데. 오늘, 형광등이 깜빡이는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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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법원, 홈플러스 회생절차 이례적 폐지… 2만~10만명 고용 충격 우려 — 파이낸셜뉴스, 2026년 7월 3일
한 줄 요약: 법원이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폐지하면서, 19년째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정년이라는 꿈이 한 줄 자막으로 무너졌다.
작가의 말
2만 명, 10만 명. 숫자가 컸다. 하지만 숫자 안에는 사물함이 있다. 십구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앞치마를 넣고, 같은 순서로 끈을 묶고, 같은 보리차를 마시던 사람의 사물함. 법원 결정은 오전에 났고, 그 사람은 오후에도 컨베이어 벨트를 닦았다. 아직 닦을 수 있으니까. 그 손이 마음에 걸려서 이 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