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반에 눈이 떠졌다.
알람보다 십 분 빨랐다. 대구의 여름 새벽은 서울보다 조용했다. 에어컨 없이도 견딜 만했다. 창문을 열면 아파트 단지 너머로 팔공산 쪽 하늘이 보였다. 아직 어두웠다.
세수를 하고 유니폼을 입었다. 남색 반팔. 가슴에 로고가 박혀 있었다. 처음 받았을 때 거울 앞에서 한참 봤다. 어울리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서가 아니라, 거울 속 자기가 낯설어서.
왼쪽 손목을 봤다. 자국이 아직 있었다. 예전 회사 다닐 때 매일 찬 시계. 퇴사하던 날 서랍에 넣었다. 그 뒤로 차지 않았다. 사 개월이 지났는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변보다 살짝 하얀, 가느다란 띠. 거기만 햇볕을 안 본 거다.
언젠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라지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샤워하다가 문득 봤을 때, 조금 옅어져 있었다. 그게 좋은 건지 무서운 건지 잘 모르겠었다.
차고에 도착했다. 511번. 그의 버스였다. 삼 주째 같은 노선이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핸들이 손바닥에 닿았다. 키보드와는 달랐다. 키보드는 손끝만 쓴다. 핸들은 손바닥 전체가 필요했다. 그 넓은 접촉이 좋았다.
오전 다섯 시 십오 분. 첫 손님이 탔다. 노란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탄다. 카드를 찍고 뒷좌석으로 갔다. 인사도 없고, 눈도 안 마주쳤다. 그게 편했다.
서울에서는 매일 누군가의 눈치를 봤다. 보고하면 왜 묻냐고 했다. 안 하면 왜 혼자 하냐고 했다. 밀폐된 사무실에서 숨이 턱턱 막혔다. 성과급이 들어오는 날에도 웃지 않았다. 돈은 통장에 쌓였고 웃음은 줄었다.
지금은 매달 어디론가 간다. 지난달 말레이시아에서 먹은 나시르막 냄새를 아직 기억한다. 코코넛 밀크에 볶은 멸치. 맛이 어떤지보다, 아무도 그에게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는 식탁이 좋았다.
종점에 도착했다. 승객이 전부 내렸다. 엔진을 끄지 않은 채 핸들에 손을 올려놓았다. 밖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이었다.
잘한 건지는 모른다. 이게 맞는 건지도 아직 모른다.
손목을 봤다. 자국이 거기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옅었다.
다음 회차까지 칠 분. 그는 창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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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성과급 안 부럽다”…삼성전자 반도체 퇴사 후 버스기사 된 대졸 20대 — 뉴스1, 2026년 6월 18일
한 줄 요약: 한양대 공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6년 일한 29세 청년이 퇴사 후 대구에서 버스기사가 됐다는 이야기.
작가의 말
이 뉴스를 읽을 때 “서울에서는 잘 웃어보지 못했다”는 한 문장이 걸렸습니다. 성과급 액수도, 버스기사의 워라밸도 아니었습니다. 웃지 못했다는 것. 그 말이 남았습니다. 잘한 건지 아직 모른 채로 핸들을 잡는 손을 쓰고 싶었습니다.